그러니까, 기억해내고 싶지 않다

폐 이식 수술

by 오뉴월의 뉸슬

왜 기억을 하고 싶어도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지 않는가. 행복했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행복하지 않았던 그런 기억 말이다. 분명 그때는 설레었는데, 결국 이루워지지 않은 첫사랑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기억들은 대체로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미완성인 순간들을 떠올리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고 그 추억에 갇힐까봐 주저하게 된다. 기절을 한 며칠 동안은 그 시간들을 통째로 잊어버렸다. 내가 꿈을 꾼게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가 증발했다. 그렇지만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유추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떤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는 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다음 날 입원했던 사흘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한다.




문 앞에서 기절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데리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나가기 전에 나는 현관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을까, 말까' 고민하며 몇번이고 망설였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 아빠는 내가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어저께 내가 졸도했던 회색 복도는 살인 현장처럼 스산함이 느껴졌다. 나는 어제의 기억들이 플레시백처럼 지나가 몸을 움츠렸다. '엘리베이터는 못 탈 것 같은데,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말할까?' 하지만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아빠가 버튼을 이미 눌렀고, 나는 꼼짝 없이 지옥의 수문장 같은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주춤거리다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아 떠밀리 듯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은 생각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렸고, 나는 엄마와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이 길을 따라가다 어제 쓰러졌지.' 어제의 현장이 살인 사건처럼 생생했다. 나는 또다시 쓰러질까봐 엄마와 아빠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난 뒤, 서둘러 입원 수속을 밟았다. 혹시나 몸에 다른 이상은 없는지 나는 입원실에서 지낸 사흘 동안 혈액 검사, 엑스레이, 심장 초음파, 보행검사, 폐 CT등 검사의 연속이었다. 그저 병실 침대에 누우면서 쉬고 싶었던 나는 힘들게 그 검사들을 진행했다. 폐혈관 의사선생님은 검사 결과가 나와야 폐 이식 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무슨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고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에 빈 공간이 생겼다. 그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난생 누구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던 '수술'은 가슴이 저려왔던 것 같다. 의사선생님 입에서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말이 나왔을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밖으로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고 눈을 크게 떠서 눈 안으로 다시 집어넣으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록색과 파랑색의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수술 집도를 하는 상상을 했다.



© directedbyshawn, 출처 Unsplash



검사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는데까지 총 4일이 걸렸다. 아침 9시가 넘도록 주치의 선생님은 회진에 방문하지 않았고, 나를 담당한 의사선생님만 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고 우물쭈물하더니 엄마, 아빠를 따로 불러내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환자는 난데 그냥 말해주지. 듣고 싶은지 안 듣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안나? 내가 절대 들으면 안되는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화 내용이 궁금해져 문 앞에 가서 귀를 대보려고 하다가 말았다. 1시간 같던 10분이 지나고 엄마 아빠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온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어둡다. 의사선생님은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나는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냐며 엄마에게 물어보지만 수술을 하게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말뿐이었다.


엄마가 말을 계속 돌리자 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낯빛이 좋지 않은 걸 봐서는 검사 결과가 최악이라는 것이고,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 엄마 아빠를 따로 불러내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야. 학생이 들으면 충격받을 말이겠지. 안 좋은 얘기는 확실한데, 말을 안 해주니 오히려 더 불안해.'


특이하게도 나는 폐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수술을 진행해서 새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폐 이식 수술만 하면 나도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던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며 푸른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상상을 했다. 담당 선생님은 폐 이식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자세히 설명해줬고, 내가 딱 하나 두려웠던 점은 수술 후 얼마동안 혼자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흰 커튼이 사방에 쳐져 있고 나 혼자 병원 침대에 누워 급박하게 흘러가는 바깥상황을 추리하는 건 무서울 것이다. '누구 부를 사람도 없는 데 갑자기 안 좋아지면 어떡해? 나는 소심해서 불편한 상황이 있어도 말을 못한단 말이야.'


"폐이식 대기자 등록을 하고 퇴원하시지요." 담당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권했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바로 수술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나보다.' 대기자 등록을 해야지 최소 2년에서 5년 후에나 폐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순번이 주어진다고 한다. '2년?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데, 5년?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이지? 아, 푸른 초원을 달리는 게 아니라 그 초원에 묻히는 거였구나.' 또다, 또.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나는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하루가 절박한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또 참아야 되고, 또 기다려야 한다. 깜깜하기만 한 터널 입구처럼 눈앞이 컴컴한 내 상황이 지겨웠다. '이럴 때 내가 돈이라도 많아서 앞 순서로 당기면 수술을 바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나는 하룻밤을 더 병원에서 보내고 나서야 퇴원을 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에게 수술은 이른 것 같다며 퇴원을 진행했다. 엄마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의사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의 의견을 따랐다. '엄마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무슨 생각인거지? 하루라도 빨리 대기자 등록을 해서 수술을 하는게 낫지 않나?' 그 후 나는 무슨 정신으로 연세대 병원을 빠져 나왔는 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던 길의 엄마 아빠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먼지가 잔득 낀 창문처럼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다. 기억을 해내려고 머리를 쓰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왜일까? 나는 그 순간들을 계속해서 밀어내려고 한다. '운수 좋은 날'이 더 절망적인 순간이었던 게 아니었나? 흰 캠버스에 검은 낙서들이 채워진다. 연필로 끄적였던 균열이 블랙홀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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