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

: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을 읽고

by 오뉴월의 뉸슬

코로나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기 몇 개월 전에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한 날이었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아버지와 둘이 남은 상황에서 길어지는 침묵이 불편해진 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 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이리저리 뛰면서 우리 테이블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큰 소란에 나는 아빠가 인상을 쓰며 짜증 낼 것 같아 아빠 얼굴을 조마조마하며 쳐다봤는데 아버지는 그 아이를 따뜻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아주 행복하게 바라보셨다. 그 아이에게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보기라도 한 건지, 내가 어렸을 때 아빠의 모습이 상상이 가면서 아빠의 그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충격이었다.


엄마가 돌아오고 저녁식사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혼돈에 빠졌다. 내가 알던 아빠의 모습은 무뚝뚝하고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조금 괴팍한 이미지였는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아빠의 환한 미소에 내가 어렸을 때도 이런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을까 하는 물음표와 여운이 남았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아빠가 방금 전처럼 그렇게 웃으며 지낼 있을까?' 아빠가 장난감을 흔들며 내 아이를 어기 둥둥해주는 모습을 내가 행복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족. 내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부모님은 손주를 보며 평범한 행복을 누려야 되지 않나? 약 2년 전 태어난 이종사촌언니네 아기가 복덩이라면서 실시간 SNS를 통해 엄마, 이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생각했다.




10대 때만 해도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애가 싫었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부모님이 어린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에게 손주를 안겨드려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언정, 아이를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키우고, 낳아서 그 아이를 양육하는 것까지의 힘듦을 겪고 싶지 않을뿐더러 다음 웹툰 <유부녀의 탄생>을 보고 임신의 무게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졌다. 고귀한 생명의 잉태가 아니라 야생적인 서바이벌 같다는 느낌에 정이 뚝 떨어졌다. 또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와 같은 병을 투병 중인 한 여성분이 의사의 권고를 듣지 않고 출산을 무리하게 강행했다가 증세가 악화됐다는 말을 듣고 더욱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나는 목숨이 위태로워지면서까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하지만 20대가 되고 나니 가끔 내가 낳을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할까? 나와는 어떤 다른 점을 지니고 있을까? 내 배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내 키보다 커지면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은 어떠할까? 나의 노년이 그리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였다. 또한 부모님에게 일방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니 마치 청개구리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몸도 잘 간수 못하는 내가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 2세가 병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산모도 갑자기 유산을 하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병이 있다는 말만 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내 병은 엄마 아빠 탓이 아니지만, 엄마가 항상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내가 낳은 아이는 내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원망을 들을 자신이 없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온갖 무례한 질문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이가 없어서 배우자와 헤어지면 어떡하냐는 물음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어떤 존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한 대답이 신기했다. 배우자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합의했냐는 물음에는 결혼 후에 외도나 술을 끊겠다고 약속한 게 깨지는 것처럼 결혼 전 모든 것을 완벽히 합의해야 할 책임이 없다는 말도 있었다. 또한 여성의 커리어 단절 문제까지 다루며 엄마가 되지 않고 무엇이 되고 싶다고 목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행복의 수단이 된다는 말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 아이를 낳으면 행복이 찾아오나? 엄마와 나는 많이 싸우고 다투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는데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래도 엄마는 확실히 오랫동안 원했던 아기를 낳았다는 안도감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아이를 낳기보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일과 목표를 정해야 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원해서 낳은 거잖아'라는 말로 상실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 여성이 아이를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돌볼수록 '새로운 행복을 얻었으니 감사하라'며 그의 삶에 생겨난 손실을 함께 복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인생 목표에 아이는 기본값이 아니다. 여성은 무엇이 되든 '무엇보다도 엄마'여야 완성되거나 더 가치가 높아지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자들의 인생에야말로 훨씬 무거운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다. -p.225~226




물론 이러한 생각이 변할 수도 있고 무산될 수 도 있다.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찾으면 그 사람과 나의 2세가 궁금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잘 맞는 배우자가 아이를 낳자고 하면 생각이 바뀔 수 도 있다. 하지만 병이 완치되기 전까지, 내 건강이 좋아질 때까지는 이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다.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합의하고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가 생각을 바꾸고 아이를 낳자고 번복하면 그냥 이혼하면 되겠지라는 책에 쓰인 말대로 두려움을 떨쳐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