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번호 1번 누구야?

by 오뉴월의 뉸슬

난 어려서부터 내 성이 싫었다. 이 십 년 동안 내 성은 '곽'이라는 무겁고 두꺼운 낱말이었다. '곽'의 한자 뜻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 곽. "'성'이 뭐야. 성(씨) 이래서 성인 거야, 아니면 성곽 할 때의 성곽이야? 진짜 '성곽城郭'이네..." 마치 '일루수가 누구야? 이루수 이름이 뭐야? 삼루수는 몰라.'라는 유명한 미국 개그맨의 농담처럼 말 그대로 내 성(씨)의 뜻은 성(곽)이었다. 내 성은 귈문 밖의 부서진 돌덩이들 같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성만 똑 떼어내고 이름만 불리고 싶을 정도로 내 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성을 극도로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출석번호 1번이라는 위치였다. 곽이라는 특성상, 곽은 '''', ''로 이루어져 있어 ''''보다 앞이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출석번호 1번을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같은 반에 ''씨이나 ''씨가 있으면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밀려나거나 하지만, 그마저도 앞 순서였다. 비애의 1번은 발표 시간에도 첫째, 청소당번도 항상 첫 번째로 불렸다. 아주 드물게 맨 뒷번호부터 또는 중간 번호부터 차례로 호명하는 선생님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늦게 불리는 출석번호 끝자리나 중간자리에 있는 성씨를 가진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 엄마는 하필 성을 가진 아빠랑 결혼했을까. 씨만 돼도 좋았을 텐데.'


곽 씨는 사람들에게 읽히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곽시우요."라고 이름을 말하면 알바생들은 "'박'이요?"하고 꼭 한 번씩 되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입을 최대한 벌리며 "'과악'시우요. 과악"이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며 'ㄱ'에 'ㅘ'에 'ㄱ'받침이라고 허공에 쓰곤 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내 이름을 기억하기보다 내 성을 더 기억하곤 했다. 나를 부를 때가 있으면 내 이름보다 "야, 곽!"하며 성만을 불렀다.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곽'은 여기저기에서 공공재처럼 쓰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이름은 어느새 그냥 '곽'이 되어버렸다.


학교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특이한 성 덕분에 나는 별명이 넘칠 정도로 많았다. 우유 배식 시간이 되면 몇몇의 친구들에 의해 우유곽, 휴지곽, 상자곽, 곽, 오리꽥꽥, 오리야, 꽊,꽦 등의 의성어들이 난무했다. 친구들은 별명을 만드는 걸 모자라서 내 성의 발성을 세게 소리 내어 발음했다. 아이들은 꽈악, 꽦꽦, 꽤액하며 '곽'을 특이하게 발음하여 괴상한 소리를 내곤 했다. 내 성이 놀림거리가 된 게 짜증 났지만 그 이상한 별칭들이 익숙해진 나는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를 이내 포기했다.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별명은 '곽오리'였다. 곽오리란 별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내 11번째 생일날에 부모님끼리 친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 세명의 친구들은 서로 짠 듯이 편지 끄트머리에 이름 대신 '곽오리에게'를 적었다. 꽥꽥거리기만 하는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노랗고 귀여운 아기 오리가 떠오르면서 그날 받은 손편지와 분홍색의 히아신스 꽃은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받고 나니 그 별명이 점점 괜찮아졌다.


이제는 친숙해진 별명 '곽오리'처럼 내 성이 특별해서 좋다.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들었던 내 성 '곽'은 이제는 나의 시그니처 닉네임이 되어주었다. 내 이름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기억될 수 있었고, 특색이 있었다. 나 혼자 '성 곽'의 단단하고 철옹성 같은 면모를 보지 못했었다. 원래 성(벽)은 대포나 화살 같은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여 평화유지와 자기 방어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열여덟 해 동안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내 성도 곧 나의 이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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