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배고파~.”
나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며 엄마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곧 저녁 올 거야.” 소설책 속에 빠진 엄마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나는 간이 책상을 두드리며 엄마의 시선을 유도했다. 하지만 늘상 있었다는 일인 듯 엄마는 책의 장을 넘겼다. ‘치, 보지도 않냐.’ 나는 무신경한 엄마의 태도에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야, 간호사가 잘못 넣었나? 조금 아프다.’ 왼 팔에 꽂혀있던 주삿바늘이 순식간에 살을 찔렀다. 루마티스 치료제가 혈관 속으로 차갑게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저번에도 괜찮았으니, 오늘도 별일 없을 거야.’ 불안해진 나는 연신 팔을 쓰다듬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병실 문이 열리면서 배식해주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기쁜 얼굴로 아주머니를 마주했다. 어제와 다른 특별식단에 기대됐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움직이려 했지만 콘센트에 꼽혀있는 루마티스 치료제가 갈 길을 막아섰다. “엄마, 이거 어떻게 해?”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식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어봤다. 엄마는 링거대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 움큼 묶여있던 전선을 풀고 링거를 끌어 탁자 앞에 옮겼다. “헐, 이거 묶여있었어?”
하얀 도자기 그릇에 올라간 뜨거운 밥뚜껑을 쇠 숟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느 김이 얼굴 중앙을 따뜻하게 감쌌다. “우와, 맛있겠다!” 새하얀 흰쌀밥이 입맛을 자극했다. 배가 고파진 나는 허겁지겁 반찬 뚜껑들을 열었다. '시금치 된장국, 오이김치, 콩나물무침, 어묵조림.' 식판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놓여있었다. 엄마는 어제 먹다 남은 고추참치와 메추리알을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근데, 특식이라더니 그릇 빼고 어제 먹은 거랑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실망한 얼굴로 제일 큰 그릇의 플라스틱 뚜껑을 들어 올렸다. “헉! 메로 구이잖아!” 윤기가 흘러넘치는 촉촉한 갈색 생선 구이는 바로 메로였다.
쇠 젓가락으로 김이 폴폴 나는 흰쌀밥 한 스푼을 떴다. ‘맛있다.’ 갓 지은 밥냄새가 나며 입 안 가득 밥알의 달달함이 퍼졌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슬그머니 접혔다. '밥만 먹어도 이렇게 맛있다니.' 나는 숟가락으로 온기가 남아있는 시금치 된장국을 한 모금 들이켰다. 고소하면서 깔끔한 된장국 맛에 침샘이 확 돌았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나는 밥을 크게 한 숟갈 뜨면서 짭쪼름해보이는 어묵조림에 젓가락이 갔다. '고추참치와 메추리알은 실망을 안 시킨다.' 달달한 메추리알과 매콤한 고추참치는 밥을 불렀다.
‘메로를 한 번 먹어보자.’ 다양한 밥반찬들에 정작 메인이었던 메로구이를 까먹었던 나는 젓가락을 고쳐 잡았다. 생선은 젓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웠다. 나는 한 점을 떼어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기름지면서 부드러운 생선 살이 입 안에서 녹아 없어졌다. ‘아, 이럴 때는 오이김치로 마무리를 해야 돼.’ 메로 구이가 약간 느끼하다고 생각될 때 아삭한 오이김치를 하나 입에 물었다. 오이는 상큼한 소리를 내며 메로와 함께 사라졌다. ‘이렇게 먹으면 계속 먹을 수 있겠다.’ 살면서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나는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지 않았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구나.’
“완전 대박이지?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 있게 된게 10년은 더 걸린 것 같아. 근데, 어떻게 입맛이 살아날 수 있지? 내가 원래 입원만 하면 입맛이 돌아오는 체질인가? 보통은 입맛이 없어지지 않나?”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내가 대견스러웠던 나는 신이 나 속사포로 엄마에게 얘기했다. “스테로이제를 써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분위기를 읽지 못한 엄마가 산통을 깨며 말했다. “아, 그렇겠다.” 별안간 이 치료에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이 생각났다. 루마티스 치료제가 체내에 다 들어가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필요했다. ‘그래도 오늘은 밥을 다 먹었으니까!’ 나는 마치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치료받으러 입원한 게 아닌 것처럼 기쁜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새도 없이 나는 다시 병원 침대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멍하니 엄마가 반찬통을 치우는 걸 보다 내 왼팔에 붙어있는 주사 바늘을 왜 하는지 궁금해졌다. “엄마, 근데 이 병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