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전 하고 싶은 100가지 : 버킷리스트

by 오뉴월의 뉸슬

초등학교 3,4학년 쯤이었다. 수업 도중에 담임선생님이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며 유튜브를 틀었다. 나는 지루한 사회 수업을 안한다는 것에 신이 났다. 칠판 위 스피커에서는 가수 이적이 부른 '거위의 꿈'이 흘러나왔다. 벽면 위에 붙어있는 텔레비전 속에는 아이가 풀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청신한 장면이 갑자기 생각났던 나는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영상 속 남자아이는 '존 고다드'라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였다. 그는 무려 15살때 127개의 버킷리스트를 적고 하나씩 달성했다. 그가 끝낸 과제는 자그마치 111개였다고 했다. '15살에 나는 도대체 무얼 했지?' 나는 자괴심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15살이 되던 해에 나는 공교롭게도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 같지 않는가? 같은 15살에 한명은 버킷리스트를 쓰고 세계를 여행했지만 다른 한명은 병에 걸렸다. 이게 무슨 운명의 쌍둥이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영화 <버킷리스트>의 두 주인공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영화에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안 두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까지 알차게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영화를 본 나는 나도 두 주인공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래요 여러분! 나는 이제 슬픔을 던져버리고 세상를 여행하며 내 삶을 마감하겠어!' 영화는 진실이 아니었다. 투병 생활은 유쾌하지 않았다. 현실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버킷리스트는 돈이 있는 자들과 삶이 평탄한 사람들의 소유물이었다. 존고다드처럼 달나라를 여행한다든가, 혹은 에베르스트 산을 등반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일 뿐였다. '너는 건강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야.' 안온함에 취하기도 벅찼던 내가 과연 꿈을 꿀 시간이나 있었을까? 하고 싶은 것들은 있었지만 다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걸 적을 여유가 없었던 나는 그저 현실을 외면했다. 나에게 꿈은, 병이 낫는 것뿐이었다. 다시 건강해진 삶을 되찾는 것이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병이 완치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버킷리스트를 쓰게 된 때는 급체로 응급실에 갔다온 이후부터였다. 구급차로 실려간 나는 병이 아니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점점 메말라간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아침 점심을 모두 굶은 나는 인터넷으로 종이 한 장을 샀다. 다음 날 택배로 배송된 종이는 B4정도 크기에 100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100개의 목표라.' 호기롭게 시작한 버킷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았다. '이생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적어 버킷리스트를 다 채워보자!' 나는 이 버킷리스트가 그저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종이의 윗면에는 'to death 죽을 때까지'라고 적었다. 처음에는 무슨 목표를 써야 될지 몰라서 헤맸는데, 중요하고 반드시 해야할 것들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책 한권 출판하기', '그림 개인전시회', '시집 내기' 등) 끝자락에는 내가 하고싶지만 당장은 할 수 없는 것들을 썼다. ('엄마랑 세계여행 가기', '세계 책방 탐방'. '혼자 배낭여행' 등) 마지막 100번째 목록에는 언젠가 써야 하지만 지금이 아니길 바라는 '유언장 쓰기'로 화룡정점을 마쳤다. 그밖에도 '결혼은 못해도 웨딩드레스 입어보기', '배 낚시하기', '사과나무 한그루 심기' 등 재밌고 하기 쉬운 목표도 여러개 적었다.



© glenncarstenspeters, 출처 Unsplash



버킷리스트를 쓰는 일은 내가 죽기전까지의 계획을 모조리 세우는 것같이 신성했다. 한 개의 꿈을 적을 때마다 '이건 못할 것 같은 데.'라고 고민하며 신중을 기했다. 또 '내가 어렸을 적 좋아했던 것은 뭐였지? 아프기 전 내 모습은 어땠지?'라고 생각하며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닌 과거를 들여다 보았다. 머리를 쥐어 짜 아무것도 몰랐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문득 초등학생 때 내가 레고를 많이 가지고 놀았던 게 생각났다. 나는 블록으로 기차도 만들고 성도 만들면서 드라마 각본처럼 스토리를 만들었다. "치익, 기차 들어옵니다!" 장난감들은 나에게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다보니 의외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게 100가지도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미완성인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5분의 1 정도가 세상을 탐방하면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간곡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니 나도 알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또한, 깊이 고민하다 삭제한 버킷리스트들도 몇가지 있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게 소원인데, 가망이 없을 것 같아 지워버렸다. '병이 낫는 것'을 쓰려다 내가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어서 없애버렸다. 100가지의 소망만큼은 내가 반드시 해내고 싶었다. 완쾌하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2020년을 맞이해 새로 쓴 버킷리스트도 생겼다.


이번년도에는 지난 해보다 더 나은 내 모습을 기대한다.



© FelixMittermeier, 출처 Pixabay



*2020년 버킷리스트
1) 에세이 한 권 출판하기
2) 염색 or 파마
3) 아무데나 여행 (하룻밤 이상 자고 오기)
4) 그림전시회 참여
5) 기타 배우기 (새로운 악기 배우기)
6) 성대마비 수술
7) 한강 피크닉
8) 단편 소설 써보기
9) 스키장 (올해는 반드시!!)
10) 설산 오르기





You know, the ancient Egyptions had a beautiful belief about death.
그거 아는가,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해서 멋진 믿음을 갖고 있었다네.

When their souls got to the entrance to heaven, the gods asked them two questions.
영혼이 천국의 입구에 가면 말야, 신이 그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했대.

Their answers determined whether they were admitted or not.
그들의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결정되었다는군.



Have you found joy in your life?
인생의 기쁨을 찾았느냐?

Has your life brought joy to others?
너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느냐?

-영화<버킷리스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