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
엄마와 같이 회사 근처에서 돈까스를 먹고 있던 점심시간이었다. 엄마네 회사 임원 두분이 오셔서 우리 옆 테이블에 앉으셨다. 식사 도중 사장님의 아버님께서 최근 태어난 둘째 증손녀가 증손자가 아니라는 걸 아시고 실망하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엄마가 할어버지들의 손자 사랑이 매우 각별하다고 얘기 하니까 사장님은 자기는 아직 손자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엄마가 외손자는 손자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뒤통수를 폭탄으로 가격한 듯 머릿속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방금 딸이 낳은 자식은 자식도 아니라는 건가? 지금 21세긴데? 저기요, 19세기 아니에요. 어디 자기 딸 앞에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사장님의 딸인 세리(가명)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넘쳤지만 다행히 엄마가 나 대신 사장님의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해 항의 해주었다.
그 날 저녁,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내가 오늘 낮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얘기하니, 아빠는 "외손주는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며 사장님을 옹호했다.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어쩌면 세상 모든 딸들이 듣기 싫었던 말. 나는 아빠가 평범한 60대라는 사실을 다시 머릿속에 깊이 새겨넣었다. "난 자식을 죽어도 안 낳을 거야. 그런데 말야, 내가 아기를 낳았어. 그럼 아빠는 내 자식을 친손주가 아니라고 생각할거야? 단지 제사를 못 지낸다는 것 때문에?" 외손주와 친손주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지 딸의 자식이냐, 아들의 자식이냐인 것 뿐인데 외(外)와 친(親)에 차별을 둘까. "예로 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니까?" 아빠는 내가 따지자 도리어 나한테 화를 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아빠가 나한테 외손주는 자식도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끔찍했다. 만약 우리 집에 아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빠는 자신의 핏줄이 이어진 진짜 자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자식. 애교 부리고 귀여운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만 아들보다는 못한 딸. 그냥 그 정도의 존재감일뿐 일것이다. 나를 지탱해줬던 관심과 사랑은 두갈래가 아닌 질량 차이로 나눠지고, 어쩌면 나보다 더 건강했을지도 모를 아들에게 무게를 더 두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관심 속에서 희귀병 검사도 못 받고 쓸쓸히 죽어갈 수도 있다. 나와 엄마가 같이 준비한 저녁식사를 아마 그애한테는 손끝만큼도 주방에 안 들여보냈겠지.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애의 존재 가치보다는 못할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한테 부러움을 느끼다니, 이보다 수치스러울 수가 없다.
내가 남자아이였다면, 내가 건강한 남자 아이였다면. 이 모든 번뇌들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가지지 못한 더 값진 사랑을 받고 있진 않았을까? 그 남자 아이는 '딸이였다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 애는 남자이니까. 그런 말 따윈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건강에 하자가 있어 어떻게 하서라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애는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게 애정을 받을 것이다. 그 남자애한테도 병이 있었다면 오히려 장남이라고 더 감싸지는 않았을까? 몸도 힘든데 부엌에서 요리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왜 나를 제대로 봐주지도 않는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을까? 어짜피 사랑도 못 받는 희귀병이나 있는 '딸'인데...
생기부에 빨간 줄이 쳐지는 것처럼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조금이라도 부정이 그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태어난 자체를 부정할 줄은 몰랐다. 단 한순간도 내가 여성이라는 게 싫지 않았는데, 나의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용암의 눈물이 흘러도 울지 않았다. 아빠에게 받은 상처는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태초로 돌아가 내 성별이 '여자'라는 걸 알았을 때 엄마와 아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 뻔하지 않는가. 엄마는 결혼 6년만에 힘들게 얻은 딸을 좋아했을 지 몰라도 아빠는 실망했을 것이다. 아빠는 자신의 핏줄을 이을 '아들'이 필요했을 거니까. 나도 아빠의 핏줄을 증명하는 성(姓) 따위 잇고 싶지 않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는 데 왜 아빠 성을 이었을까? 원래 다 그래 왔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힘든 건 다 엄마가 했는데, 영광은 홀랑 아빠가 챙겨 먹은 것 같다. 아, 내가 남자 아이였다면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겠지? 그저 편히 눈과 귀를 가린채 엄마 아빠가 주는 대로 넙죽 받아 먹었겠지. 그깟 성이 뭐 대수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수천년동안 이어온 관습을 네가 왜 의문을 가지냐 면서 조롱했겠지.
얼마 전에 엄마와 꽃집에 갔었다. 꽃집 주인이 나와 엄마를 번갈이 보더니 똑같이 닮았다며 "요즘에는 딸이 더 좋대 ~."하며 엄마를 위로하는 말을 들어버렸다. 아들은 키워봤자 결혼하면 마누라한테 빠져서 효도하는 딸이 더 낫다고. '누우가 효도를 한다고 했죠? 효도를 하지 않는 딸은 낳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한번도 내 존재 자체로 귀하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왜 나를 태어나지도 않은 남자애랑 비교할까? 남자 애들은 자기 엄마랑 같이 있으면 무슨 말을 들을까 궁금해졌다. "딸보다는 아들이지."같은 말을 들을까? 아니. 비교조차 안하겠지. "금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셨네요."하며 엄마를 칭송할 것이다. 딸이 더 좋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아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갈 길이 한참이나 멀었다고 생각한다. 엿 같은 남아선호사상.
당신이 살아온 날들은 성별을 떠나 찬란히 빛납니다. 누가 뭐래도, 그 누구도 당신의 가치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편해 할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