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상담사를 찾는 법

1년 동안 6곳의 상담 기록

by 오뉴월의 뉸슬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공부 스트레스 같은 평범한 이유는 아니었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간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알던 '상담'은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2 때 나는 질병 결석을 밥 먹듯이 했고, 학교를 가기 싫어했다. 물론, 등교를 거부하는 요인이 있다는 걸 엄마도 알고 나도 알았지만 둘다 대화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와 갈등이 깊어져가고 우는 날이 잦아졌다.


이대로 학교를 그만두게 될까봐 걱정이 된 엄마는 나를 데리고 상담 센터에 갔다. 물론 원해서 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싫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처음 마주친 상담 센터의 기억은 간판이었다. 헬스와 같은 영단어로 쓰여있던 간판은 피트니스 센터인줄 알게 만들었다. 상담이란 단어가 생각에서 지워질 때쯤, 엄마가 프론터에서 A쌤에게 상담받기 위해 왔다면서 직원에게 말을 건냈다. 직원은 모니터를 들여다 보면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엄마가 뜬금없이 성을 바꿔말했다. "김**이요."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다른 이름으로 번경하려 했으면 바꾼다고 얘기할 것이지 엄마는 단 한마디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바뀐 호칭을 들은 나는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는 내가 상담을 받는 게 부끄럽구나. 주변에 우리 딸이 상담한다고 얘기도 못하겠지. 나는 엄마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니까. ' 곧장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센터에서 난 첫날부터 내 존재를 부정당했다.






센터를 갈때마다 김**으로 불리우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일주일마다 상담선생님을 만나도 '내 이름'만큼은 적응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를 김**라고 기억하겠지. 내 이름은 그게 아닌데.' 내가 한 짓이 아니었는 데도 상담쌤을 속이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나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희귀병부터가 이 사단의 시작인데 내 병을 말하면 안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담사가 엄마한테 '희귀병이 있어서 아이가 힘들어 한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엄마가 나를 호되게 혼내킬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병도 슬픔도 아닌 전혀 다른 이야기를 꾸몄다.


두번째에 다닌 상담 센터도 비슷했다. 이름을 바꾸니, 내가 말할게 줄어들었다. 나는 총 6곳에서 상담을 했는데, 대부분 가면 문제를 풀었다. 컴퓨터로 글자색을 다르게 표시한 단어를 보여주면서(Ex: '파랑'이면 파랑색이 아닌, 색깔 빨강을 눌러야 된다.) 반응 속도를 측정하기도 했고, 상담 선생님과 판넬에 그려진 데칼코마니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이 무엇같이 생겼는지 떠오르는 것을 말하게 하기도 했다. 블록으로 제시된 모양을 만든 곳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게 색연필을 준 곳도 있었다. 가끔씩 상담쌤의 눈치를 보게 됐는데, 그럴때마다 상담쌤은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아서 '내가 정답을 말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도 테스트했던 걸 계속 반복하니 지루하기까지 했다. 재밌었던 심리 검사는 질문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써가지고 오라는 종이에는 나의 꿈은 --------. , 엄마는--------., 와 같이 빈 칸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Achieving 'The Champion Mindset': Leadership






내가 만나본 상담사 중 최악은 B교수님이었다. 그 분은 전 이화여대 심리학 교수였다. 나는 언제나 B교수님의 집에서 상담을 했는데, 교수님의 집은 2층 구조로 돼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는 수고를 했어야 했고, 실내는 난방이 꺼져있어 추웠다. 두세번 상담을 받으니 그 분은 점점 나를 내담자가 아닌 '어린 학생'으로 봤다. 내가 엄마와 싸웠던 얘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교수님은 부모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라며 엄마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왜 가지 않냐며 곧장 본론을 파고 들었다. 나는 내 이야기도 듣지 않고 내 행동부터 지적하는 상담사가 싫어 얼마 안가 그만두게 되었다. 5번째 상담사는 심리 관련 서적을 쓴 분이었다. 엄마는 그 책을 읽고 나를 저자에게 데려가셨는데, 전문의가 아닌지 30분동안 말 한마디를 안하더니 끝냈다. 거기에는 내가 다녔던 곳들보다 성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래서인가 '나'를 보는 게 아닌 '10대'를 대하는 듯 말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남 XX연구원이었다. 방송에 나오는 분이라고 해도 내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앞서 유명 작가에게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분은 달랐다. 10대인 친구들을 많이 다뤄보셔서 내 마음을 꽤뚫듯이 알고 계셨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학생이라고 가르쳐들지도 않았다. 그 분은 나를 기다려 주실뿐, 핸드폰을 하거나 시계를 쳐다보며 지루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속 얘기를 꺼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XX연구원에 가끔 다니고 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자그마치 1년 동안 6군데를 돌아다녔다. 상담사를 많이 만나보니, 상담은 역시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맞지 않는 데도 꾹 참고 다니기 보다 다른 곳을 찾아보다보면 자신과 맞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유명한 상담의를 찾기 보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생각하는게 좋겠다. 지금 내가 상담에 쓸 수 있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여성 상담자가 편한지, 남성 상담자가 편한지를 따져보는 것도 괜찮다. 나이 차이가 많은 상담의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력이 많아 속 이야기를 꺼내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만약 학생이라면 청소년 상담을 전문하는 곳을 찾는 게 빠르다. 아무래도 수많은 사춘기 소녀소년들을 만나봤으니 그만큼 10대의 마음과 눈높이를 아시는 것 같다. 결국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다른 상담사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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