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기 수도 공급이 곧 끊긴다는
경비 사무실의 뻑뻑한 안내음성이
거실과 부엌 천장 가운데
동그란 회색 스피커 안에서
먼지를 한 웅큼 뿜어내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천장에 걸린 먼지들을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비상시 필요한 물을 받기 위해
불 꺼진 고요한 화장실에 들어가셨다
물소리 하나 흘리지 않던
검정 안에서 색 밖으로
깨끗한 욕조를 강타하는 흑백의
작은 폭포소리가 그릇을 가득 채운다.
아직 때묻지 않은 청정의 기억 속에서
청벙대며 거품을 터트렸던
한참 낡은 날들, 아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래된 시간들이
묻혀진다
훅 꺼져버린 텔레비전 앞에
하얗기도 검기도 한 내 얼굴 하나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금지구역이 되어버린 목욕탕
떡져버린 머리카락 사이로
얼룩진 손, 아직은 하얗다고 믿고 싶은 손
밀려 들어온다. 결국 오늘도
머리 감는 걸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