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by 오뉴월의 뉸슬


전기 수도 공급이 곧 끊긴다는

경비 사무실의 뻑뻑한 안내음성이

거실과 부엌 천장 가운데

동그란 회색 스피커 안에서

먼지를 한 웅큼 뿜어내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천장에 걸린 먼지들을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비상시 필요한 물을 받기 위해

불 꺼진 고요한 화장실에 들어가셨다


물소리 하나 흘리지 않던

검정 안에서 색 밖으로

깨끗한 욕조를 강타하는 흑백의

작은 폭포소리가 그릇을 가득 채운다.


아직 때묻지 않은 청정의 기억 속에서

청벙대며 거품을 터트렸던

한참 낡은 날들, 아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래된 시간들이


묻혀진다

훅 꺼져버린 텔레비전 앞에

하얗기도 검기도 한 내 얼굴 하나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금지구역이 되어버린 목욕탕

떡져버린 머리카락 사이로

얼룩진 손, 아직은 하얗다고 믿고 싶은 손

밀려 들어온다. 결국 오늘도

머리 감는 걸 포기한다




@Vladimir Agafon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