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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 Kim Nov 21. 2016

우리 집에 새로운 생명체가 생겼다.

나의 애완 메주 생활기 - 1편

[나의 애완 메주 생활기]

1편: 우리 집에 새로운 생명체가 생겼다.

2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

3편: 장 담그기에 생을 오롯이 바칠 준비는 안 되었지만


지난주 우리 집에 새로운 생명체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초조하다. 우당탕쿵탕 삼층까지 뛰다시피 단박에 올라간다. 마음이 급할 때면 더 말을 안 듣는 문고리에 열쇠를 구겨 넣고 이리저리 휘젓기를 한참. 가까스로 문을 연다. 손에 든 장바구니와 가방을 방바닥에 던져 놓으며 냄새부터 맡는다.


킁킁-

엇, 미묘하게 구수하고 약간 달큼한 내음이 감지된다. 부랴부랴 손을 씻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니?



우리 집 새로운 식구, 메주

나는 올 겨울, 내년 봄이 되면 장을 담글 메주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무려 캐나다 몬트리올, 복도를 나눠 쓰는 5 가구가 사는 공동 주택 빌딩에서.


꼬릿한 메주 냄새에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주먹만 한 작은 메주를 내 방에서 키우다가 친어머니께도 쫓겨날 뻔했는데, 이 먼 나라 사람들에게 가족의 그것을 넘어서는 관용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균 감염을 이유로 살균하지 않은 생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것을 불법화*한 전력을 가진 그들의 엄격한 위생관념에 대고, 삶은 콩을(무려 몇 달이나) 발효해 내년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냄새라고 해명을 했다가는 모두가 질겁할 것이 분명하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누군가가 위생청(혹은 이민성에)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 메주를 널어놓는 것도 안심할 수 없다. 올가을 내내 우리 집 발코니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말리고 있던 가지나물과 애호박나물을 심심찮게 먹어온 다람쥐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무수한 염려를 뒤로 하고, 나는 그래도 메주를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 90년 대 말, 식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생우유 및 생우유로 만든 치즈 판매를 금지했다. 이 규제는 많은 논란을 거친 후, 현재 퀘벡 주에서는 복잡한 절차에 따라 허가를 받은 치즈 제조자만 생우유 치즈를 제조 및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 공정부터 제품 운송까지 워낙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생우유 치즈 메이커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메주의 존재 이유

음식이 부패하지 않도록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이 아니다. '한나절 삶아낸 콩을 일일이 찧어내 메주를 만들고, 몇 달에 걸쳐 적절한 균을 키워 발효해 장을 만들고, 또 몇 달이 지나 장 가르기를 하여 재발효를 시키는 과정'을 통해 콩을 먹는 것이, 오늘날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 섭취 방식이 아닌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어렵게 얻어낸 항암 효과가 있다는 발효균을 보글보글 끓여 유산균을 소멸시키고 먹는 된장찌개만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식단이라고 우길 마음도 없다.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훨씬 적은 수고를 들여 신선한 재료들로 못지않게 건강한 식단을 만들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복잡한 일을 하려 하는가. 다행히도 아직 세상에는 효율로만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관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순간이 와도, 우리는 그 습관을 그냥 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맛이기 때문이다. 추억과 함께 버무려진 맛의 기억은, 약간의 불편을 동반하더라도 평생을 함께 가는, 본능이 찾는 미각이 된다. 타지에서 살며 치즈가 잔뜩 올라간 햄버거나 기름이 줄줄 흐르는 피자 등으로 해장을 하는 이곳 사람들의 방식도, 이제는 꽤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내 해장 음식 리스트 1번은 죽을 때까지 뜨겁고 시원한, 매운, 국물일 것이다. 이런 이치다. 나는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란 육신과 기억을 가졌다.


그래서 냉장고에 놓인 꼬릿한 재래식 집된장과 고추장은 나의 든든한 구원 투수다. 요리하기가 영 귀찮을 때는 냉장고에 들어있는 채소를 잡히는 대로 꺼내 듬성듬성 썰어 밥에 올리고 참기름에 고추장 한 스푼을 얹는다. 비빔밥을 가장한, 간단하고 건강한데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한 끼를 만들 수 있다. 된장은 또 어떤가. 굳이 한국 음식이 아니어도 샐러드드레싱이나 야채수프에 집된장을 살짝 넣으면 그야말로 우마미(감칠맛) 폭발이다.


사적인 식탁에 정치성 얹기
one table at a time

식탁을 바꾸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대자본이 생산하는 재료는 쓰지 않겠다거나, 육류는 소규모 농장이나 협동조합에서 키우는 것으로만 쓰겠다고 한다면, 그 끼니에는 정치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조금 거창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믿고 살고 있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탈지 대유(콩에서 기름 등 주 영양가를 채취하고 남은 부산물)와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가당 재료인 옥수수 시럽*을 넣어 감칠맛을 내는 된장을 우리 밥상의 중심에서 내려놓는 일은, 단지 한국 음식이라는 옛 전통을 지키거나 보다 깊은 맛의 된장찌개를 밥상에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그런데, 옛말 중 틀린 게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메주를 띄우고 음력 정월 좋은 날을 잡아 장을 담가 두어 달의 발효를 걸쳐 간장과 된장을 가르기까지. 거진 반년은 걸리는 일 년 농사를 지었는데 행여나 그 장에서 구더기가 나올까 봐, 정말로 두려웠다.


요즘 같은 인터넷 정보시대에 키보드를 몇 번 두들겨 찾지 못할 조리법이 뭐가 있겠냐만은, 장 담그기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제일 먼저 인터넷에 올라온 조리법이 하나같이 각양각색이었다. 장 담그기의 특성상 표준화된 정확한 조리법이 있다기보다 어머니가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구전되어온 조리법이기 때문일 거라 짐작해본다. 또 그나마 있는 조리법도 그다지 친절하지가 않다. 콩 한 말에 물을 '충분히' 부어, 너무 설익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게 '적당히' 익힌 후 빻아야 한다는데, 콩 한말은 지역에 따라 7kg일 수도 8kg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 적당히 잘 익은 콩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설익은 콩으로 장을 담그면 단백질 분해요소가 제대로 침투하지 못해 장이 탁하고 맛이 떨어지고, 너무 무르게 삶으면 메주의 밀도가 너무 높아져 발효가 잘 안 된다고 하니, 콩을 적당히 익히는 것이 중요한 관건인 것은 틀림없었다) 전적으로 손맛에 의지해온 노동의 절정인 장 담그기는 그 조리법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막연함이 더해만 갔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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