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안부 묻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by 코고아모

2025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머쓱해지는 요즘입니다.

저는 모욕과 모멸과 분노와 좌절과 무기력과 환멸과 대노의 무한 사이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떠신지요.


사실 지난 11월 - 12월에 생애 첫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2월 2일에 귀국했는데 와서 이전과는 다르게 지내봐야지, 새롭게 지내봐야지 다짐했었습니다. 그 다짐 중 하나가 '브런치에 글쓰기' '이야기 쓰기'였는데... 네, 12월 3일 밤 키보드 칠 힘도 없을 정도로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기조차 띄엄띄엄 쓰는 날들이 흐릅니다. 그럼에도 쓰시는 분들이 있던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닌가봅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습니다. 1월 3일에 윤씨를 체포하지 않고 물러선 공수처 다시 격분을 하고 나니 온 몸에 다시 힘이 쭉 빠지더군요. 사실 한 달 쯤 지나면 윤씨는 감옥에 가고 공범들도 속속 잡혀갈 줄 알았습니다. 순진했던 거죠. 네, 이래서 무슨 이야기를 쓰겠다고. 악인의 행동 따위도 예측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다들 어떻게 쓰시는지...


여하튼 그렇게 살다가 이곳에 다시 찾아온 건, 오래됐지만 방치됐던 내 글터에 다시 글씨앗을 뿌려볼까 싶기도 했고 어디 터놓고 이런 저런 답답한 마음이라도 풀어놓자 싶어서 왔습니다. 제가 어디 간 지도 모르시겠지만, 서두의 인사를 이렇게 길게 적은 건 무작정 글 초입부터 짜증을 낼 수가 없어서입니다. 사실 쓰고 싶었던 건 다음의 글이었습니다.


아, 화가 납니다. 화가 많이 납니다. 환멸이 불쑥불쑥 솟구칩니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어도 민주주의에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투표 결과에 따라서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견뎠는데 '계엄 선포'라니요. 계엄,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 아니었는지. 그런데 윤씨와 그 추종자들은 아주 오래전 부터 준비해 온 계엄이고 전쟁을 일으키려고까지 했다는 것 등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줄줄이 엮여서 드러나는데... 나라가 정치가 썩을대로 썩었구나하는 게 확 실감나더라고요. 어떻게 선출된 대통령이 스스로 내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 새로운 뉴스들이 속속 뜨고 있고요. 매일 아침 뉴스에 치를 떨며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날들 속에서 내가 무언가를 딱히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정치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밀려오는 환멸감들을 견디고 또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힘든 건, 모멸감이었습니다. 내가 고작 저딴 수준밖에 안되는, 극우 유투버의 말과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망상 속에 빠진 인간이, 법 조차도 마음대로 유린하는 게 내 나라의 '대통령'이라니 모욕적이더군요. 환멸이 일어났습니다. 그냥 참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서 내 머리 속에서 딱 이거다! 하는 감정을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데 괴롭습니다. 그래서 견뎌보고자 선택한 것이 '시위'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안 나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가서 고함이라도 치고 오면 낫겠거니 해서 갔습니다. 일처리가 더딘 정치권과 공수처, 경찰에 내 목소리 하나 보태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응원봉 들고 나갔습니다.


나가서 보니 나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현장에 가면 더 화가 날 줄 알았는데 묘하게 그 현장이 위로가 됐습니다. 다들 화나서 나오긴 했는데 그곳엔 나이불문 성별불문 정체성불문, 모두가 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린 그걸 '연대'라고 하죠. sns로 연대의 순간들을 많이 접했지만 눈으로 보니 그건 참 슬픈데도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동안 '폭도'로 몰리고 오해받았던 민주노총이 길을 트고 사람들이 그 뒤로 서는 모습이었습니다. 3일 오후부터 한남 관저 지근거리 도로에 집회 장소가 마련되었고, 한 줄기의 시위대가 민주노총과 민변의 뒤로 합류하고 또 한줄기의 사람들이 시위대 뒤로 합류하고 가게의 사람들은 손을 흔들고, 지나가던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사람들이 또 합류하고 합류하면서 거대한 한 줄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알겠더군요. 모두가 이렇게 종종 함께하면서 견디고 있구나, 라는 걸요. 그리고 매번 시위에 나와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심까지 느꼈습니다.


문득, sns에서 본 글귀가 떠오릅니다.

''안정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이 세상에 안정이란 없습니다. "노력하면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라든지 "최선을 다하면 성공합니다"라는 말은 거짓입니다. (...) 하지만 아무리 불안한 세상이라 해도 맨 마지막 순간에 '이것만큼은 절대 굽힐 수 없어, 굽히지 않겠어'라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그런 사람은 빛나죠. '이것만큼은 결코 양보 못해' 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어디서든 빛이 납니다."

- 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 안천(옮긴이)) -


대책없는 낙관이 아닌, 이거라도 해보자는 심경으로 나선 사람들, 정의가 법이 무너지는 것만큼은 결코 볼 수 없는 사람들, 독재 시도 앞에서 결코 굽힐 수 없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추운 겨울에 길에서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여의도, 광화문, 한남동 곳곳에 모인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냥 그분들과 한 마음이라는 것과 한 편이라는 게 너무 큰 위로가 됩니다.


시위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고작 몇 번의 참여로 이렇게나 벅참을 느끼는 글을 쓰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바라건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탄핵이 하루빨리 결정됐으면 하는 바랍니다. 12월 3일, 계엄의 밤에 지체없이 국회로 달려가서 계엄군의 차를 막았던 분들, 밤새 시위를 하면서 탄핵을 외친 분들, 그 분들은 좋은 세상을 좋은 대통령을 만날 자격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나중에 '내가 이런 세상 보려고 그때 추운데서 고생했다' 라고 웃으면서 지금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저는 이렇게 지냅니다. 탄핵 심판이 끝나기 전까지 제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넋놓고 있을 순 없으니 또 하루 살아봅니다. 글도 조금씩 적을겁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가다보면 바라는 날이 오겠지요. 탄핵의 날, 그동안의 마음을 다시 한번 써보렵니다.


잘 지냅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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