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요?

저는 여름살이 중입니다

by 코고아모


한겨울입니다. 어젯밤에 목이 칼칼하더니 아침엔 가래가 살짝 생겼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목이 부었다며 약을 주더군요. 그리고 독감이 유행하니까 조심하라는 당부를 수차례 합니다. 감기 조심, 독감 조심이란 말이 인사의 마침표처럼 찍히는 요즘 한겨울답게 날씨가 무척 차갑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강레몬차를 한 컵 가득 만들어서 두 손으로 꼭 쥡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의 계절은 지금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여름을 지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제 인생을 10대-20대는 봄 30대-40대는 여름 50대-60대는 가을 그 이후는 겨울, 이렇게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렇게 나눠보니 아! 나 지금 '여름휴가' 중인가? 싶더라고요. 갑자기 웃음이 피식 납니다. 그러면 좀 편하게 놀아도 되는 거잖아?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저는 마흔의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2025년 1월, 공식적으로 일을 하지 않은지 석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인생에서 어딘가에 적을 두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쉼을 가진 건 처음이라 처음에는 속상하고 당황스러웠고 무기력했다가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그 감정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요. 처음의 속상함은 바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데서 닥쳐왔습니다. 16년 차에 접어든 프리랜서 작가, 일을 시작하고 16년 차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일을 이어서 했거든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고 거의 끝날 때쯤, 제안을 받아서 또 일을 시작하고, 때론 지인의 추천으로 때론 저 스스로 일을 구해가면서 멈추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촘촘하게 틈이 없이 연결되고 연결되던 커리어였죠. 그런데 갑자기 그 촘촘했던 연결고리가 툭 끊어진 겁니다. 딱히 저는 찾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제 연차의 작가를 찾는 곳도 가뭄에 콩 나듯 했습니다. 나이가 문제일까, 커리어가 문제일까, 돈이 문제일까 성격이 문제일까, 뭐가 문제일까... 원인을 찾기 위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그럴수록 제 마음속의 우울은 끝을 모르고 아래로 아래로 파고들기만 했습니다. 우울하고 밤에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새벽에 고요해지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공기처럼 덮쳐와서 잠을 못 이루곤 했거든요. 이튿날엔 기절하듯이 열몇 시간씩 자곤 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잠을 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만 스스로를 찌르자'이 쉼을 언제까지 뭘 탓하면서 보낼 건가? 언제까지 이틀에 한번 잘래?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우울하게 살 건가? 너도 좀 생각해!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납니다. 사실 주변에서 나를 찾지 않는 건, 그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았으니 그 속은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나이'의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도 했고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거나, 내가 성실하지 못했나?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게 너무 미안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쉬기 바로 직전에 2년 8개월가량,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면서 달렸거든요. 그런데 '내가 못해서'라고 하기엔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 싶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 해주자 싶더라고요. 물론 그러면서도 내가 나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구나 하는 좌절감을 완벽히 떨쳐내진 못했습니다. 내가 작가로서, 혹은 협업자로서 뭔가 뾰족한 한 구석을 보였어야 했는데, 막연하게 그냥 성실하기만 했던 거죠. 그런 패착을 안고 가되, 나에게 수고했다 잘했다고 해주기로 하니 조금씩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빠져나오진 않았어요. 일을 해야 완전히 빠져나오겠죠? 그래도 며칠 전부터 매일 밤, 하품이 나온다는 데 안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살 궁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하던 일과 더불어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슨 글을 더 쓸 수 있을까? 내가 읽고 쓰는 것들이 또 다른 업이 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더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면서 주변을 좀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뛰어놀던 그 영역 밖을 보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여전히 나는 내 일이 좋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프리랜서가 이제야 비로소 '프리'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렇게 버둥거리면서 지나온, 지나고 있는 30대 후반과 마흔 초반의 날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끙끙대며 힘들어하는 모습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뜻하지 않게 만난 이 쉼이 마치 뜨거운 여름에 단비 같은 여름휴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로 치면... 한 8월쯤 되려나요. 뜨겁고 축축 처지지만, 온 세상이 푸르르고 쨍쨍하기도 한 그런 8월이요.


그렇게 저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습니다. 내리쬐는 현실은 때론 버겁고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 숨 돌릴 그늘을 찾아보기도 하고, 멈춰 서서 주변도 보고 그러면서요. 훗날 나의 40대를 멀리서 봤을 때 푸르르고 쨍쨍한 순간도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계절은 어디쯤인지 궁금하네요.

어느 계절을 지나든, 지금은 독감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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