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하고 싶어요?
.... 그런 건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나서 커피를 한 모금했다. 내 앞엔 똘똘한 눈을 한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 내 말을 노트에 적었다.
대학생 한 명이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학교 수업 중에 직업인을 인터뷰해서 발표하는 과제가 있다고 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학과 교수님이 내가 제작에 참여하는 방송프로그램의 출연자여서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 '내가 해 줄 말이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10년 이상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살았는데 또 못할 말은 무엇이겠는가,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학생과 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그램 이야기부터 제작 과정, 방법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한 성심성의껏 현장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게 1시간쯤 흘렀을 때 그 질문이 왔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고 하던데 장단점이 뭔가요?"
대답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사실 미리 질문지를 받아서 1차로 답변지를 한 번 작성해 본 터라 질문이 갑작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취업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현실적으로 와닿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도 프리랜서로 나름 10년 이상을 살아봤으니, 그 직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좋은 말만 해줄까.
"먼저 장점부터 이야기할게요"
프리랜서의 장점이라, 가장 큰 건 '내 시간'을 내가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일을 하고 있으니 일과 관련된 정해진 시간 외엔 내가 뭘 하든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다. 마감만 잘 지킨다면! 2시에 회의하고 4시에 퇴근하면 다음 회의날까지 (일만 한다면) 여행을 가도 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도 좋고, 자유다.
그다음 장점이라고 한다면 능력만 된다면 수입이 무한정 늘어난다는 것이겠죠. 방송작가를 예로 들면 프로그램을 두세 개씩 하는 분들도 계시고, 본인이 능력만 된다면 여러 개를 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일하면 자연히 수입이 늘어난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만 한다면 내 통장의 돈은 무한정 불어날 수 있다. 월에 1000만 원, SNS에서 보이는 월에 천만 원 벌었어요가 마냥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뭔가 뜨끔했다. 학생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뜨끔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어마어마한 유명세로 저작료 등 각종 부가수입으로 월 천을 가뿐히 버는 분들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나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월에 1000만 원 벌면서 워라밸을 할 순 없어요. 단점을 이야기해 볼까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통장에 1000만 원이 꽂힌다는 것은 그만큼 내 시간을 써서 일을 한다는 뜻이다. 200만 원을 버는 사람과 1000만 원을 버는 사람의 여가 시간이 같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잠이 부족하든, 놀 시간이 부족하든 부족할 수밖에 없다. 능력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서 돈을 많이 벌 수록 워라밸은 없다고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닐까. 당연한데.. 가끔 돈 몇 백만 원씩 버는 걸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더라. 어쩌면 이건 내 노파심에서 꺼낸 말일 수도 있지만 어땠든 많은 돈과 워라밸은 같이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일단 밀어닥치는 일을 하다 보면 잠잘 시간, 당연히 없다. 마감시간도 제각각이고 회의 시간도 제각가 피드백도 우후죽순 날아온다. 그걸 맞추다 보면 내 여가 시간이 없어지는 건 부지기수다. 마감 넘겨놓고 침대에 널브러지는 게 일반적이다. 미리 하면 되지 않나,라고 하지만 참 생각보다 그게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고 한 거다)
그렇게 일하다가 페이가 찍히면 그간의 노고는 일순간 환희로 바뀌긴 한다. 그런데... 그게 한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쌓이면 어느 순간 노고의 시간 동안 갉아먹은 내 체력과 생명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그건 누가 입금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써버리는 것인데, 문제는 그걸 회복하기 위해선 그 배의 노력과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맞춰서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나 스스로의 버전을 버전 1 버전 2 버전 3.... 유행하는 것들, 사람들의 관심사 등등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면 되지, 싶지만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고요한 곳을 계속 찾는 건가...)
그리고 내 시간이 생기는 게 좋지만, 반면 잘 관리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지기 딱 좋은 게 프리랜서다,라고도 했다. 언제든 먹어도 되고 언제든 자도 된다. 언제든 놀아도 된다. 그건 곧 정해진 시간에 밥을 안 먹기 딱 좋고 잠을 안 자기 딱 좋다. 그게 왜 단점인가, 경험상 그러면 건강이 서서히 무너진다. 하루에 바빠서 밥 먹는 거 미뤘다가 아무 때나 먹고 바쁘니까 안 잤다가 몰아서 자고.... 그렇게 살아봐서 안다. 그건 어마어마한 후유증으로 몸에 닥친다. 그러니 어느 정도 일상의 계획을 만들어놓고 지켜가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결론은 그랬다. 프리랜서로 일 한다는 건 결국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이냐 워라밸이냐, 어느 정도의 돈을 벌길 원하는가, 시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내가 나를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인가, 또 내가 스스로 업그레이드해 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건 전반적인 방송작가의 상황이 아니고 전적으로 내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참고로 이건 학생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전혀 프리랜서에 맞는 성향이 아니었다. 정말 다사다난한 시간이 지난 후, 현재 프리랜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깨닫고 내 시간을 디자인하고 규칙을 만들고 지키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더 깊은 단점들이 있지만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 사람들과만 이야기하는 걸로.)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학생에게 다시 물어봤다. 콘텐츠작가를 언제부터 꿈꿨냐고. 학생은 솔직히 말하면 콘텐츠 제작 외에도 다른 직업군도 고려하고 있다고. 꿈이 많을 나이고 취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나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다른 직업도 고려한다는 건 혹시 내가 단점을 가득 말했기 때문은 아니겠지? 다 말해놓고 소심함이 작동하여 잠깐 아주 잠깐 뜨끔했다. 여하튼 내 사례가 일반적인 게 아니라 세상엔 다양한 프리랜서의 형태가 있다고 그대를 응원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메일 하라고. 성심껏 아는 선에서 답해주겠다고. 그땐 주변 사례를 조금 더 찾아봐야겠지. 조금 더 희망찬 이야길 해줘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사실 내가 같이 일하는,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겁먹고 지레 도망칠까 봐 잘하지 못한 말이었는데 어쩌면 후배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동종업계 직업인이 될 수 있는 학생에게 말해보았다.
오늘도 본인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많은 프리랜서 동료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보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