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

나를 좋아하는 법을 알려줘 #6

by 김진혁

이름이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첫 번째 줄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에게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그렇다면 내 이름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본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대략 줄거리를 대보자면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이다.


“네 이름은 당시에 엄청 인기 많고 머리 좋은 아나운서 이름에서 따왔다. 그런데 이름을 잘못 알아서 한 글자가 조금 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보니 그 이름(아나운서의 이름)보다 네 이름이 덜 흔하더라. 개성 있는 이름이지 않니?”


‘유명인에게서 따온 것’이면 그나마 괜찮다. 그 사람처럼 멋지게 자라길 기원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잘못 알아서 실수로~’가 덧붙여지니, 내 이름이, 내 존재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당시의 열악한 인터넷과 검색 능력으로 개명할 방법을 찾아봤다. 부모님이 반대할 게 뻔해 빠르게 포기했다. 그렇게 가명과 영어 이름으로 관심이 돌아갔다.


초등학생 때 나의 이름은 Alex가 될 수 있었지만, 선생님이 “여자애가 무슨 알렉스냐. 그건 남자 이름이다.”라고 해서 Angela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다.) 이후에도 영어 이름은 몇 번 바뀌었고, 그 때마다 잘못 불리거나 오해를 산 일이 상당히 있었다. 다 적기엔 너무 길어지니 닉네임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블로그와 카페 활동하던 시절부터 닉네임을 하나로 고정하기 힘들어할 정도로 많이 바꿨다. SNS 시작 뒤에는 더 자주 바꿨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20개 정도다. 거의 일년에 한 번꼴로 바꾼 듯하다. 닉네임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는 계정별로 달라서 5개의 닉네임을 돌려가며 쓰고 있다. 그중 하나인 ‘김진혁’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건 ‘필명’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한 이름이다. 본명을 기본으로 몇 가지 글자를 바꿔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이름을 지은 뒤에서야 드디어 ‘나’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이름이어서 그런 걸까? 가볍게 활동하는 닉네임은 계속 바뀌고 있지만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만약 이 시리즈를 출판하게 되면 작가명은 ‘김진혁’으로 적혀있을 거로 생각한다.)


나를 스쳐 지나온 여러 개의 이름은 나를 갈아치운 이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여러 면모의 나를 표현해 온 수단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본명은 그저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필명이나 닉네임들은 내가 선택한 ‘나의 이름’이고, 그것들을 통해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