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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Apr 01. 2022

안녕하세요, 삽질하는 여자입니다

몇 년 동안이나 한 네이버 블로그에 나의 소개글 하나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하나 써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겠지?'

'아니, 그래도 사람들이 알고 싶은 정보를 좀 써야겠지.'

이 두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면 될지 고민이 되었다.


'자기소개'라는 것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어떻게 자신을 소개할까? 가장 먼저 나오는 문장은 무엇일까? 자신의 소속 집단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거나, 취미나 호불호로 시작할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을 키워드로 소개할 수도 있겠지?


한 친한 언니는 한국에서 같은 회사를 쭉 다녔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소위 현타가 왔다고 했다. "삼성전자 다녀요." "와 멋있어요!" 정도의 한두 마디를 끝내고 나면 할 말이 없었다고, 새삼 '내가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 언니는 퇴사를 하고 좋아하던 취미 생활을 맘껏 한 뒤, 지금은 외국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아무래도 자기소개를 하게 되는 상황은 이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아니면 입사 면접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독일 회사에서는 한국에서처럼 '1분 자기소개'류를 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의 가장 최근 '대외적 자기소개'는 수년 전, 한국 회사에  첫 입사 면접을 볼 때였다. 그때 내가 자기소개를 시작한 첫 문장은 이거였다.

삽질하는 여자, ㅇㅇㅇ입니다.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름 나의 대학 생활을 분석한 뒤에 추려진 한 문장이었다. 딱히 취업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때그때 재미있던 것을 하면서 살았더니 내 손에는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이력서만이 남았고, 나의 족적은 도저히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되지가 않았다. '햐 삽질 참 많이 했네..'라는 혼잣말이 나올 때쯤, 이걸로 내 소개를 해야겠다고 정했다. 여기저기 쑤셔대며 삽질을 하다 보니 우물은 못 팔지라도, 삽질해놓은 땅에 농사라도 짓던지 꽃이라도 심어보자 하는, 나름 20대 중반 당시 나의 철학이 담긴 자기소개이기도 했다.


그때보다 10년 정도의 인생이 더 쌓인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조금 범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삽질하는 여자? 블로그 새 글쓰기를 띄워놓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귀차니스트? 취향이 없는 게 취향인 사람?' 정도의 수식어였다. 사실 머뭇거린 이유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나와 지금 나 자신의 괴리감 탓이다.


독일에 와서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은 일을 너무 좋아해 퇴근 후 저녁 시간에도, 주말에도 일 얘기만 내리 하는 사람들이다. 대기업에서 10년을 넘게 쭉 다니고 있는 한 친구는 자기 일을 아주 좋아해 일 이야기로만 몇 박 며칠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럿이 보는 자리에서는 한 명이 전담 마크를 해야 할 정도다. 어느 주말은 이틀 연속으로 남들의 회사 이야기를 내리 들어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이런 생소한 환경에 놓이게 될 때마다 이야기를 한 쪽 귀로 흘리면서 드는 생각은 '대단하다. 나는 어떤 것에 저렇게 열정이 있지? 나는 어떤 것에 대해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사람이지?' 등이다. 워커홀릭 친구들의 이야기가 볼륨을 낮춘 배경 음악처럼 뒤에 깔려있을 때, 문득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이 떠올랐다. 유레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꼭 글로 밥벌이를 하겠다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고 훌륭한 글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공표하기에는 왠지 머쓱하기도 했고, 실상은 글 한 자 쓰지 않는 날들이 대부분인 현실과의 괴리를 잘 알고 있기에 더 쑥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글보다는 '기록을 하는 사람'인데, 꾸준히 기록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물을 목적으로 삽질을 한 것이 아니듯, 나의 기록들이 결국은 글이 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결국 작성한 블로그 소개글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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