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ter den Kulissen
얼마 전에 한 친구를 만나 몇 시간 동안이나 목이 쉬도록 이야기를 했다. 독일에 와서 알게 된 한국 친구인데, 우연하게 맺어진 사이라고는 하지만 통하는 게 많아 항상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여느 때처럼 근황이나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칵테일을 한 잔 걸치고 나서 나눈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우리는 무대와 관련 있는 과거를 갖고 있다. 둘 다 유학을 거쳐 외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느라 나이에 비해 커리어 경력은 초년생 수준, 그렇기 때문에 이 무대와의 인연 역시 기껏해야 학생 때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10대와 20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에 찐하게 한 경험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지 않았나. 이런저런 '부캐'를 만들 필요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을 던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길지 않은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주로 무대 위에 서는 역할이었다. 종종 다른 친구의 일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스태프들 사이에서 구경을 한 적은 있지만 '나의 일'은 주로 무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악기를 연주할 때도 있었고, 춤을 출 때도 있었고, 연기를 할 때도 있었다. 고장 몇 명의 관객부터 수백 명까지, 실내 공연장에서 길거리나 지하철 역까지. 불특정 다수 앞에 서서 보이는 찰나의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몇 주에서 몇 달까지 수도 없이 반복하고 연습하던 날들. 학생 시절 취미 생활일 뿐이었다고는 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쭉 이어온 이 취미 생활은 전반적으로 임팩트가 큰 경험이었다.
친구는 주로 무대 뒤에 있었다고 한다. 직접 무대에 서지는 않았지만 구상 단계부터 실행 단계까지 밤을 새 가며, 작은 디테일까지 공을 들여 준비를 했다. 한 번은 무대를 이루는 다른 구성원들과 역할을 바꾸어서 극을 준비해본 적도 있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역할과 관점에 따라 보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무대가 취미였던 나에 비해 그것이 전공이었던 친구의 이야기는 더욱 다채로웠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콘서트를 보고 왔다. 예약해두었던 콘서트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두 개나 취소가 되면서 문화생활을 안 한 지 오래된 기분이었는데, 다행히 취소되지 않은 영화 음악 콘서트를 볼 수 있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첫 곡이 시작하는 순간, 내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첫 곡의 멜로디 때문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하자마자 보지도 않은 그들의 준비 광경이 상상되었다. 옆에 있는 동료와 교환하는 눈빛, 수십 명의 박자와 음정이 딱딱 맞추어질 때의 짜릿함. 내 눈앞에서 연주되고 있는 노래 그 자체보다, 무대 위에 있는 그들보다 공연을 위해 했을 준비나 무대 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연습했던 나의 지난날들도 함께 떠올라서 왠지 음악을 들으며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황홀하게 음악에 빠져들어가는 동시에 생각이 마음대로 날뛰도록 풀어놓았다. 콘서트 관람 며칠 전 들었던 친구의 경험담 덕분인지 무대의 뒤와 앞, 옆에 있는 사람들과 그 전후의 노력 등에 대한 상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논리 없이 터져 나오는 생각고 상상을 따라가다 두 번째 곡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꿈에서 잠시 빠져나온듯한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취미 생활로라도 무대를 준비하고 무대 위에 서본 경험은 내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마도 나는 평생 무대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 주위를 맴돌 것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