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속했던 다양한 그룹에서 막내를 담당했다.
자주 참여하는 빈도 순으로 그 집단들을 나열해보자면:
1. 회사. 2년 차에 다른 팀에 한 살 어린 막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전체 부서에서 막내였다. 노느라 졸업을 조금 늦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내가 논 시간만큼을 교환 학생이나 다른 활동에 쓴 친구들이 많아 동기들 사이에서도 두 번째로 어린 나이였다. 나의 ‘어린 나이’ 덕분에 다소 충동적이었던 퇴사 결정도 쉬웠다고 고백한다.
2. 영화 모임. 양아빠와 양딸의 관계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선생님 덕분에 들어갔던 영화 모임. 회사와는 차원이 다른 나이 차가 있던 그룹이다. 패션 업계에서 일한다고는 했지만 엑셀을 써서 제품을 생산할 뿐인 나의 예술력(..?!)이 많이 딸린다고 느꼈던 모임이자, 매번 대화에서 많이 배운 모임이었다. 모든 내용을 소화하기엔 역사나 문화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무리였지만, 평소 주변에서 만나기 힘든 산업계에 있는 인생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다.
3. 그림책 모임. 친한 언니가 나름 몇 명을 골라서 꾸린 모임. 출판사에서 지원을 받은 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리뷰할 책들을 받고, 읽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언니들과 나..라고 부를 수 있던 만남으로 결혼을 일찍 한 언니들이 있어서 유일하게 결혼 후 삶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다. 이후 이 모임 멤버들로만 출간된 책이 세 권! 덕분에 숟가락 잘 얹었다.
4. 스페인 안주 요리 교실. 나름 들어가기도 힘들고 대기도 길다고 했는데, 역시 친한 언니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된 곳. 나이 차는 영화 모임과 비슷했는데, 즉 내가 압도적으로 어렸다는 뜻이다. 영화계나 학계, 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영화 모임에 비해 요리 교실 멤버의 배경은 더욱 다양했지만 남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덕분에 요리를 처음 배우는 주방 보조처럼 재료 준비만을 돕는 정도로 요리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사회생활에서 더 높은 직위에 있거나 다양한 사업을 하시는 분 등등 세상 사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귀동냥으로도 행복했다.
이 외에도 주기적으로 모이는 목적 없는 친목 모임에서도 나는 대부분 막내였다.
그러다가 굳이 나이를 묻지 않는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 대학원 시절 과 친구들은 대부분이 나보다 어렸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훨씬 더 많이 보낸 가까운 친구들은 또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단순히 우연이었나, 아니면 내가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나이가 몇 살씩 더 많은 외국 친구들은 아무래도 중국에 오기 전까지의 삶이 더 길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경험을 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끌린 것이다. 한국에서 참여했던 다양한 그룹도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끌렸을 뿐인 것이다.
앞으로 만날 미래의 친구들, 지금 독일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언니나 누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지금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는 시기 (하지만 동시에 가장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긴 하지만 ^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