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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May 12. 2023

이스트리아 반도로 가자 2

길 위의 플레이리스트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하게 시간을 오래 보냈기 때문에, 평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노래가 귀에 들어온다. 특히나 쭉쭉 뻗은 직선와 주변 다른 차들밖에 없는 고속도로는 운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루한 편이어서, 항상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마저도 귀에 감긴다. 수십 곡의 노래를 들으면서 보낸 시간이겠지만, 딱 마침 타이밍도 좋고 상황에도 어울리는 노래가 나왔을 때의 순간들을 기록했다.


◦ 교통 체증에서 해방되었을 때 마침 나오던 노래는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 마침 엄청 크고 낮은 보름달이 떠서 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날아올라 하늘을 밝히며 춤을 추는 오리가 떠올랐다.


◦ 그 뒤를 이은 노래는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마침 아우토반에서 속도 제한이 없는 구간을 말 그대로 날듯이 달리고 있던 차였다. 노래 가사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크로아티아라고 하자. 그댈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으니.


◦ 고속도로에 어울리는 고속도로 로맨스 역시 빠질 수 없다. 어쩐지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건 윤종신의 버전. 그래서 로망스가 아니라 로맨스다. 너무 좋아서 미쳐버리지는 (아직) 않았지만 도시를 뒤로 하고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은 좋으니 우린 너무 사랑해요 (?!)


국카스텐의 모나리자도 나왔다. 이런 편곡 버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 노래의 전주만 듣고도 어깨가 둠칫거린다면 우리는 혹시 동문일지도. 각종 학교 행사에 그리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도 후렴구에선 율동 동작까지 생생하다. 이어서 나온 토요일은 밤이 좋아까지, 혹시 아카라카 또는 연고전 응원곡 플레이리스트도 있는 것 아닐까. 아, 이제는 신곡이 많이 추가되어서 나는 하나도 모르는 노래 투성이 일지도 몰라.


◦ 류블랴나에 거의 다 와갈 때는 청량하게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재생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슬로베니아도, 류블랴나도 처음이라 다시 만난 세계보다는 초면이라는 내용의 노래가 더 어울릴 듯 싶지만, 드디어 도착했다는 후련함과 기쁨에 청량한 멜로디가 더해져 좋은 마무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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