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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Apr 09. 2023

이스트리아 반도로 가자 1

명절 연휴 고속도로와 킴제 호수

프랑크푸르크를 찍고 돌아온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떠나는 여행. 이곳의 상반기는 공휴일이라 쉬고 나서 눈 씻고 돌아서면 또 공휴일인, 휴식의 연속이다. 덕분에 하반기가 다소 팍팍하긴 하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상반기에는 휴가를 아끼다가 하반기 (특히 10월 정도)에 몇 주를 쓰고는 콧바람을 쐬는 것이 큰 흐름.


최대한 일을 빨리 끝마치고 출발하자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남편의 일이다. 나는 이미 오후 세 시에 부문장이 다들 즐거운 부활절 연휴 보내라는, 사실상 ‘퇴근들 해라!’ 메시지를 받아놓은 상태. 짐은 점심 식사 이후부터 야금야금 챙겨두었다. 아, 근데 내 것만 ㅋ.. 남편의 마지막 콜과 업무를 끝낸 뒤 정말로 컴퓨터를 끄고 준비된 여행가방을 닫았다. (그 와중에 남편은 콜과 콜 사이에 야무지게 짐을 챙겼다.) 2주 연속 방치될 예정인 집은 이미 먼지투성이지만 이건 다녀와서 치우도록 한다.


그렇게 집을 나선 건 오후 5시경. 부활절 연휴가 아니더라도 퇴근 인파로 길이 막히고 대중교통이 붐비는 시간이다. 한 번에 크로아티아까지 바로 갈 생각은 없고,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쉬었다 갈까 했지만 그 적당한 곳으로의 도착 예정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만 있다. 특히 뮌헨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할 때 지나가야만 하는 로젠하임 주변은 공사 현장까지 있어 한 시간이나 교통체증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단다. 거대 도시 서울을 떠나 사는 삶 중 최고는 인파와 교통체증의 부재인데, 연휴를 앞둔 퇴근 시간에 도로 위에 오르다니. 서울의 교통 체증이 그리워서 그랬던 건 절대 아니다.


고속도로가 막히면 국도로 가야지. 날도 아직 길고 밝겠다, 뮌헨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 건 산과 들이겠다, 갈 수 있는 한 고속도로를 피해 작은 바이에른 산골 마을들을 여럿 지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또는 같은 내비게이션을 보는) 사람들이 적진 않았던지 2차선 도로 치고는 우리 방향 교통량이 상당했다. 시골길의 절반은 구수한 거름 냄새를 맡으면서, 그림 같은 눈 쌓인 산들을 보고 감탄도 하면서, 팡(Pang)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마을이 1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게 달렸다.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왔을 때는 그리 심하게 막히지 않았고, 바이에른의 바다라고 불리는 킴제 호수 옆을 달린 덕분에 해안가 드라이브 기분도 냈다.


킴제가 보이는 김에 잠시 차를 세우고 호숫가를 걸었다. 같은 주인 바이에른에 있지만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오기엔 거리도 있고 차도 막히는 길이라 우리가 언제 또 노을 녘에 이곳에 오겠냐며. 봐둔 비치 바(ㅋㅋ)를 찾아서 가보았지만 아직 날이 따뜻해지지 않아서 모든 비치 바와 레스토랑은 닫혀 있었다. 겨우 열려있던 호숫가 매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노을 지는 경치를 보며 사진도 찍었다. 이 정도면 에너지 충전. 다시 출발이다.

어디까지 갈지 딱히 정해두지는 않고 가는 여행. 평소의 1.5배는 더 걸리는 연휴 교통난 덕에 오늘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의 움직임을 예상하기보다는 목적지를 정해 두고 몇 시가 되든 그곳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정이 되기 전에 류블랴나에 숙소를 예약했다. 이젠 별수 없이 오늘밤 거기까진 가야 한다.


가족들을 방문하러 루마니아로 가는 길은 이것보다 훨씬 더 멀지만, 넉넉하게 휴가를 내고 명절이 아닐 때 가기 때문에 차가 밀리지는 않는다. 괜히 더 피곤해지는 것 같은 기분은 퇴근한 후 출발했기 때문일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서일까. 새삼 떠오른 생각인데, 이탈리아나 헝가리, 슬로베니아에 갈 때마다 오스트리아는 마치 없는 것처럼 지나친다는 것 ㅋㅋㅋ 외국 느낌이 덜해서 그런지 당일치기가 아닌 본격 여행으로 가기에 오스트리아는 뭔가 썩 내키지가 않는다. 다양한 음악도 틀고 노래도 따라 부르며 그래도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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