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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May 13. 2023

이스트리아 반도로 가자 3

류블랴나,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야

독일을 벗어나 오스트리아에 있는 휴게소를 들르고, 마지막으로 슬로베니아 고속도로 통행권을 사러 들른 곳이 정말 마지막 쉬어가는 곳이었다. 휴게소 가는 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니었던 그곳은 굉장히 낯선 분위기였다. 아직은 오스트리아라 오스트리아 또는 우리처럼 휴가를 가는 듯한 독일 차도 많았지만, 이상하리만큼 흡연율이 높았다. 담배 중독자들은 다 거기 모여있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도 피고, 차 밖에서도 피고, 통행권을 구입하는 부스 앞에서도 핀다. 몇몇은 이곳 주차장에서 밤을 새우려는 건지 거의 짐을 풀고 머무르려는 태세다. 희한하군.. 밤에 도착한 류블랴나에서는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잠에 들었다.


차에서 계속 이동을 했다는 핑계로 시간 상관없이 간식거리를 계속해서 먹었더니 아침에는 약간은 속이 더부룩한 상태로 일어났다. 겸사겸사 몸도 풀 겸 호텔에 있는 헬스장에서 아침 공복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힘이 빠진다는 것에 놀랐다. 한 끼만 건너뛰어도 배고픈 몸뚱이니... 공복 운동은 좀 더 체력이 올라오고 나면 도전해 봐야지. 그래도 통창에 숲을 보며 운동할 수 있는 곳이라 힐링했다. 7시에 여는 헬스장을 7시 반쯤 갔는데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놀랐다. 상당히 부지런한데. 사우나랑 수영장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호텔은 약간 외곽 느낌이 나는 곳에 있었는데, 시내로 아침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는 하이킹으로 유명한 듯한 곳들이 있었다. 평일의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이미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가득했다. 조금 늑장 부렸다가는 차 댈 곳이 없겠군. 초록초록한 자연을 지나자 멋들어진 큰 빌라 같은 집들이 보이더니 대사관저 및 대사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 국기, 미국, 중국, 태국 국기... 근처에는 동물원도 있고 식물원도 있고. 이곳들 역시 이른 아침인데도 주차장이 가득 찼다. 류블랴나에 살면 주말이나 쉬는 날을 이렇게 보내게 되는 건가.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금세 류블랴나 시 중심 주차장에 도착. 뜬금없게 쇼팽의 흉상을 만났다. 뭐지. 왤까.


중앙 광장으로 나와서 구경한 류블랴나의 첫인상은 이랬다. 여기가 공산권 국가이긴 했구나. 중국 생활에서 익숙해진 (구) 공산국가 특유의 널찍하면서 휑한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크기의 동상은 덤. 
류블랴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에 있기도 했고, 바이에른 공국 소속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슬라브어 계열이지만 독일어의 흔적도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슬로베니아어를 모르니 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아침 식사를 할 곳을 찾아다닐 겸 시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사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이기 때문에 류블랴나는 잠시 쉬어가는 곳. 하지만 짧은 인연이라고 해서 소홀하고 싶지는 않기에, 류블랴나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려고 한다. 시내를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이미 구글 지도를 둘러보면서 놀란 점. 평도 좋고 실제로도 좋아 보이는 카페가 굉장히 많다는 것. 딱히 최고의 카페를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없으니 그냥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은근 사람들이 또 많네. 2층으로 올라가 메뉴판을 받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원두 종류와 커피 음료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애초에 메뉴'판'이 아니라 메뉴 '책'이다. 같이 곁들여 먹을 머핀과 파이도 맛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예뻐 보이는 곳들은 들어가서 구경하고, 왠지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많이들 들어가는 빵집을 따라 들어가 몇 개를 따라 사기도 했다.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늘어선 카페와 음식점 분위기가 좋아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한 곳에 들어가 강 옆 분위기를 만끽하기도 했다. 아직 쌀쌀했던 뮌헨보다는 봄 느낌이 좀 더 난 덕분에 꽃나무 밑을 걸으며 사진도 많이 찍었고. 걷다 만난 핑크색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내부도 구경했다. 


짧게 머무른 류블랴나에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곳은 살아도 너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여행으로 간 도시에서 이렇게 강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고작 세 번째. 첫 번째는 밀라노, 두 번째는 상하이였다. 정작 두 도시에는 살아보지 않고 베이징과 뮌헨에서만 살아본 게 재미있네. 왜인지 모르겠지만 류블랴나에서는 골목길을 걸어도, 교외의 자연을 봐도, 카페나 음식점을 갈 때도 '여기서 산다면,,'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뭔가가 내 맘을 편하게 만든 걸까. 까짓 거 그냥 막 와서 독일어도 배웠는데 앞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살든 그곳의 언어는 배우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슬로베니아어에 대해 좀 알아봄.)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겠지만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 든 모양이다. 그래서 류블랴나 시내를 누비며 우리가 여기에 산다고 가정하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떨지, 류블랴나 생활(ㅋㅋ)에서의 퇴근 후와 주말이 어떨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엄청나게 돌렸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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