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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기대하는 것

by mig

최근 뮌헨 지하철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혼자 몸도 잘 가누지 못하고 멀리서도 술냄새가 진동하는 한 남자 사람이 혼자 앉아있던 여자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


나는 그 자리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여자분이 거절의 의사를 보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전까지는 둘이 같은 일행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자초지종은 모르겠고 (있을 리도 없겠지만) 말소리도 잘 들리지는 않지만 혹시나 걱정이 되어서 힐끗힐끗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 내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좌석 쪽을 주시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성 분이 말로만 거절 의사를 밝히다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취객을 제지하고 그 여성분을 자기 맞은 편인 안쪽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취객이 취객이 아니겠지. 도움을 주는 분에게도 혀꼬인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그 여성분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래서 도와주는 분이 취객을 물리적으로 제재하면서 “싫다고 하잖아요!”라고 호통을 쳤다. 결국 여자분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그 취객이 따라가지 못하게 지하철 안에 떼어놓음으로써 일단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엔 나도 곧 내려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그 여자분이 취객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에서 안심이 되었다. 실랑이가 벌어지던 때, 지하철 같은 칸 모든 사람들의 눈은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마 목소리가 더 커지거나 몸싸움이라도 벌어졌다면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었을 것 같다. 이런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분은 운이 안 좋았을 뿐이지,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살면서 소소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발 벗고’ 도와주는 경험은 이미 여러 번 했다. 설명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별거 아닌 일 같아서 ‘아니, 이걸 이렇게 자기 일처럼 뛰어들어 도와준다고?;;;;’ 했던 적도 몇 번 있다. 사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처럼 보이니 더 걱정을 샀던 경험도 있다. 그들은 10대 학생들이기도, 길가에서 마침 근처에 있던 중장년 분들이기도 했다. 서비스직이나 고객센터 종사자보다 길 위의 사람들이 훨씬 더 친절한 것 같다.


한 번은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한 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있었다. 무슨 일이 났나, 사고라도 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무서운 상황인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다가가서 지켜보자.’라고 했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찰나에 드는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니 싶어 나름 충격이었다. 나는 바로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이 들거나, 생각보다 행동으로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자라면 (?)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뮌헨 지하철에서의 경험이 서울이었더라면, 부끄럽지만 나는 귀는 쫑긋하고 있을지언정 그 취객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 폰을 보는 척을 하거나 시선을 피했을 것 같다. 내가 되려 다음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그랬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지하철 같은 칸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의 연대가 생긴 기분이었고, 물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없더라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취객을 계속해서 노려봤다.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나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면서도, 나도 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을 줄 준비가 된 사람이고 싶다. (최근에는 육체적으로도 강하고 쎈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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