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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 살다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

독일 수도 아닐 수도

by mig

뮌헨은 내 인생 세 번째 도시다. 도시 구석구석은 물론 도시라고 할 수 없는 6환까지도 다녀온 베이징이 나의 두 번째 도시. 그리고 언제나 첫 번째일 내 고향 서울. 생활양식 상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보여주듯, 대도시라는 말로도 부족한 메트로폴리스 수준인 한국과 중국의 수도에서 살았고 지금은 바이에른의 주도에서 산다.


경제력도 좋고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도 충분하며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까지 있는 곳. 도시의 개념이 우리보다 작은 크기인 독일, 아니 유럽에서만 평생을 산 사람들에게는 이미 뮌헨에서의 삶이 즉 대도시에서의 삶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나에게 뮌헨이 ‘작은’ 도시라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으로 30분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조금 멀다고 해도 45분 선이고, 교통체증은 특정 시간만 피하면 겪을 일도 거의 없다. 도시가 작으니 도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다. 특히 도심에 살지 않는 덕분에 우리 동네부터 이미 한적하고, 자전거로 15분, 차로 5분 정도면 호수와 나무가 있는 자연이 펼쳐진다. 서울에 살던 때보다 일상생활에서 걷는 양이 줄기는 했지만 산책도 하고 자연을 더욱 즐기게 되었다.


뮌헨이 서울이나 베이징 정도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은 아주 가끔, 내가 ‘서울스러운’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깨닫는다. 예를 들면 당연히 특정 외국 브랜드의 매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문득 어떤 물건을 보고 싶을 때나 사고 싶을 때, 뮌헨이면 당연히 매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는 허탕을 치는 것이다. 심지어는 독일에 아예 매장이 없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생각해 보니 서울은 각종 브랜드들의 아시아 유일 매장이나 아시아 1호점이 문을 열곤 하는, 절대 그저 평범한 도시가 아니었다.


서울, 베이징, 뮌헨. 이렇게 나열해 놓으면 보이는 차이점. 바로 수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사는 도시에, 아니 그 전체 주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없다는 건 매일 느끼는 불편함은 아니지만 은근히 거슬린다. 새삼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가장 큰 공항도 가까웠고, 각종 대사관이나 공공 기관 등의 건물을 방문하기 쉬웠단 것을 깨달았다.


가끔 뉴스를 보면서 베를린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국 일처럼 보일 때도 마찬가지. 최근 영국의 왕인 찰스 3세가 베를린과 함부르크를 방문했다. 가십을 다루는 잡지들부터 주요 신문까지 그의 방문 소식으로 시끄러웠지만 뮌헨에 사는 입장에서 그것이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서울에서 G20이 열렸을 때 삼성역에서 서지 않는 지하철과 막아버린 대로 등을 통해 그 열기와 분위기를 느꼈던 것, 트럼프의 방중으로 베이징 하늘이 꿈같이 맑아졌거나 양회가 진행 중일 때 느껴지던 그런 분위기가 아무래도 뮌헨에서는 덜하다. 그래서 더욱 뮌헨=독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 같기도. 생전 처음 수도가 아닌 곳에 살면서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참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수도에 살고 있지 않아 불만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바이에른 주의 주도이긴 하니까 여전히 ‘도시 생활’을 하고 있긴 하다. 가끔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울/베이징과의 차이점을 느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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