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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걸은 이유가 있어

아주 뿌리 깊은 이유

by mig

왠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에는 ‘쓰레기 TV 프로그램’을 향한 애증이 넓게 퍼져 있다. 스스로가 독일 텔레비전은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셀프 디스를 하는 건 기본, 각종 ‘쓰레기 쇼’들을 밥먹듯이 대화 소재로 삼는다. 덕분에 이 쓰레기 쇼(?)들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화제성을 얻고, 아마도 그렇게 계속 이어져오는 것 같다.


이 쓰레기 쇼들은 보통 예능 프로그램이다. <도전 슈퍼모델 독일 편 (GNTM)>, <정글 캠프>, <배츌러>/<배츌러렛> 등이 대표다. 우리 회사에는 세 번째 프로그램의 새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모두 함께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며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지에 2유로씩 거는 내기가 있다. 친구네 회사에서는 첫 번째 프로그램을 다 같이 모여서 본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이 쓰레기 쇼 열풍에 힘을 더했다. 독일은 안 그래도 한국에 비해 미국의 대중문화 영향이 강한 편이다. 유튜브 인기 동영상이나 음악 스트리밍 순위 상위권에 미국 컨텐츠가 자주 보인다. 쓰레기 쇼 팬을 자처하는 한 동료는 카다시안 가족 쇼도 다 보았다고 하고, 독일 연예 뉴스에서도 미국 연예인들 소식을 들을 수 있다.


2월 말이 다가오며 넷플릭스는 플랫폼 안팎으로 <투 핫 독일 편> 홍보를 했다. 이전에 성공적인 미국 메이크오버 쇼인 <퀴어 아이> 역시 독일 편이 등장했었지. <투 핫>은 말 그대로 ‘핫한’, 성관계가 인생 최고 가치인 젊은이들이 스킨십 금지인 섬에서 지내면서 성관계가 아닌 다른 면에서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쇼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성공적이었는지 다른 대륙, 나라, 언어로 계속해서 후속작이 나왔다. 그리고 2월의 마지막 날, 독일어 버전이 공개된 것이다.


매체를 그리 자주 접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방에서 <투 핫 독일 편>에 대한 광고가 터져 나왔다. 시간은

남아도니 어째, 한 번 1화나 보자 했다. 그리고? 참가자 소개를 끝까지 보기도 전에 꺼버리고 말았다.


대본도 있고, 출연자와 연출자가 원하고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도 있겠다. 하지만 유교걸인 나에게 그들은 ‘투 핫’이 아닌 ‘투 머치’였다. 다른 사람들의 호불호도 궁금한데, 나는 이상하게 너무 참을 수가 없이 거부감이 들었다. 왜? 그저 유교걸이라서?


점심 산책을 하며 그 이유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했다. 영어/독일어와 한국어의 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영어의 쉿!이나 독일어의 샤이쎄! 는 모두 똥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똥!이라고 외치면 얼마나 귀여운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말의 많은 욕설이 성기나 성행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속어나 욕은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확실히 적은 노력으로 스트레스를 낮추어준다. 하지만 문장의 절반이 욕설로 되어 있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올라갈 것 같다. 정도가 넘어가면 불쾌감이 들겠지. 이렇듯 욕 = (성기/성행위 관련 단어들) = 불쾌감이라는 연결고리가 한국어 화자인 내 머릿속에 생겼기 때문에 섹스섹스를 외쳐대는 예능 속 사람들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거나, 그냥 웃고 넘기지만은 못하는 것 아닐까. 흠. 아니면 그냥 유교걸이라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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