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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조금은 커졌나

by mig

우연히 알고리즘에 이끌려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한 사람의 채널에서, 내가 볼 일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았다. 나의, 그리고 우리 부부의 삶의 철학과 굉장히 반대되는 철학을 가졌으며 동시에 사회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아주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분의 이야기였다. 왠지 늘어지는 주말 저녁이었고, 뭐라도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싶으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나 보자 싶어서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끝까지 다 본 뒤의 감상 역시 영상 시작 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나와 남편 모두 '정말이지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할만한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일지 뜨악 소리가 나올 만큼 가볍게 억-조대로 돈을 굴리는 부자였다. 큰 감흥이 없이 쉽게 잊힐만한, 지구 반대쪽에 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몇 년 전에 비해 왠지 내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그렇게나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 영상을 재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가 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일상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영상을 보면서 말을 한마디 두 마디 얹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상을 다 본 이후에도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지, 정말 이해 안 되는 사람이네!'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는 요즘 세상.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만 갇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놈의 알고리즘이 비슷비슷한 것, 나와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꼭 온라인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잘 맞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을 주변에 두고 자주 만나기 쉽다. 모두가 서로 바쁜 현대 사회다 보니 가까운 사이였지만 소원해지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꼭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성격이 아닌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다 보니 아마도 나도 모르게 포용성이 조금은 자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상을 클릭하고, 끝까지 다 본 뒤 '음, 이 사람의 인생에서는 돈이 최고 가치이구나. 그리고 그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성공적이게 되었겠지.' 정도의 감상평에서 끝난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어떤 종류의 성장으로 느껴졌다. 이제야 조금은 생각하는 머리가 자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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