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치찌개와 갈비찜

국경을 넘은 소울푸드

by mig

결혼 전, 처음으로 독일 부모님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늦은 오후 비행기로 도착해서 집까지 오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오기 전부터 남편이 미리 구글 지도로 몇 번을 보여주었던 곳이라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서울이나 베이징과 달리, 낮은 세모 지붕의 집들이 귀여웠다. 부모님 역시 베이징에서 이미 뵙고 같이 여행을 했기 때문에 나름 구면인 사이. 그때의 나는 독일어를 하나도 몰랐지만, 영어를 잘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이렇게 낯설고도 익숙한 독일에서의 첫 만남. 그중 가장 낯설고 익숙한 것은 바로 김치찌개 냄새였다. 뭐지? 베이징에서도 자주 먹지 않던 김치찌개가 웬 말인가. 그것도 독일에서. 계속 맡다 보니 김치 냄새는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바로 남편이 어머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자우어크라우트 수프였다. 발효된 양배추와 후추, 파프리카 가루, 약간의 향신료에 매콤한 헝가리 소시지를 넣은 수프. 파프리카 덕분에 국물이 빨갛기까지 해서 더욱 김치찌개 같았다. 한식 느낌이 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루마니아 식으로 밥까지 해 주셨다. 루마니아식 밥은 소금과 허브 등으로 간을 한 냄비밥이다. 밥과 함께 먹으니 정말로 찌개 한 그릇을 먹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때 자우어크라우트를 이용해 비슷한 수프를 해 먹는다고 한다.


남편과 처음으로 한국 여행을 갔을 때,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 맛집을 데려간 적이 있다. 나에게는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고, 그곳의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기도 해서 간 곳인데, 생각보다 그는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맛있기는 한데 내가 아는 맛이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까지 한국 음식도, 중국 음식도 대부분이 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미각 체험이었다면, 내가 야심 차게 데려간 양푼이 김치찌개 집은 그에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수프를 떠올리게 했던 거다.


지난 추석 어머님과 아버님까지 모두 한국으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모든 친척들은 요리 경연 대회라도 나가는 것처럼 각자 필살기를 준비했다. 누구는 잡채, 누구는 소고기 찜, 누구는 간장 게장 등등. 그 대회의 승자는 바로 우리 엄마였다. 우리 엄마가 만들었다는 걸 알지 못했지만, 시부모님께서는 돼지갈비찜을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바로 옆에 소고기 갈비찜도 있었지만, 단연 승자는 돼지갈비찜이었다. 다 같이 함께 독일로 돌아온 후에도 어머니께서는 종종 말씀하셨다. 감자가 듬뿍 들어간 굴라쉬가 너무 맛있었노라고. 소스 레시피를 알고 싶으시다고. 그렇다. 헝가리안 문화에서 자라 시기도 한 시부모님께는 색다른 달달한 소스의 한국 굴라쉬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던 것이다. 두 분 모두 이제 근 30년을 살아오신 독일의 문화 또한 갖고 계시기 때문에 감자가 들어간 음식을 싫어하려야 싫어하실 수 없다. 엄마의 갈비찜은 엄마도 알지 못한 채 시부모님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그 후에 부활절 연휴에 할머님들을 뵈러 루마니아에 갔다. 오는 길에는 헝가리에도 들러서 죄르, 세게드, 데브레첸, 부다페스트 등의 도시들도 구경했다. 부다페스트의 한 음식점에서 굴라쉬로 가득 찬 메뉴 중 아무거나 시켰는데, 수프형이 아닌, 매콤한 버전이 아닌, 갈비찜이랑 똑같이 생긴 굴라쉬가 나왔다. 이름은 아직도 기억을 못 하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갈비찜이랑 똑같아서 감탄하고, 한 술 뜰 때마다 공깃밥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족과 남편 가족의 소울 푸드는 같다. 김치찌개와 굴라쉬, 또는 자우어크라우트 수프와 갈비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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