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리와 함께한 뻬쩨르

by m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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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고속 열차라고 하는 삽산 (Сапсан, SAPSAN)을 타고 뻬쩨르, 상트 페테스부르크로 간다. 뻬쩨르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로 가기 위해서 레닌그라드 역으로 갔다. 반대로 모스크바로 가려면 뻬쩨르에서 모스크바 역을 찾아가면 된다. 역 근처 광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찰들 중 한 명을 붙잡고 "삽산?"이라고 하니 기차 타는 곳을 알려준다.


나의 홀로 하는 러시아 여행에 큰 도움을 준 친구가 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뻬쩨르에서 교환학생까지 했던 친구다. 조금 오래된 책이지만 여행 정보와 간단한 역사가 있는 책도 주었고, 거주했던 짬에서 나온 바이브로 추천 맛집과 비추천 카페 정보도 알려주었다. 덕분에 러시아 전역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여럿 갖고 있는 긴자 프로젝트 (Ginza Project) 앱을 받아 뷰도 좋고 맛도 좋은 곳들을 골라 다닐 수 있었다.


특히 고마웠던 것은 나에게 이고리를 소개해준 것이다. 물론 별명으로, 그의 진짜 이름은 이고르다. 한국에서도 살았고, 한국 시장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는, (내 맘대로) 한국통. 마침 또 이고르의 한국 친구도 상트 페테스부르크에 있던 때라 하루 날을 잡아 셋이서 함께 돌아다녔다. 그 한국 친구는 러시아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블라디보스톡 쪽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뻬쩨르에 머무는 동안 도서관에서 러시아어 공부를 하면서 현지 문화도 익히는 중이라고 했다.


"여기는 상트의 교보문고라고 보시면 돼요."


랜드마크이자 커다란 서점인 돔 끄니기 (Дом книги)를 소개하는 이고리의 말. 상트 페테스부르크의 줄임말은 뻬쩨르인데, 한국인들이 상트라고 부르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그의 짬.. 비가 잔뜩 내리는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집어 구경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상트의 날씨를 잘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보다 날씨가 안 좋고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란다. 여름에는 그래도 해가 길어 좋겠다고 하니 9월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 후에는 눈이 계속 내린다고 했다. 그나마 날이 좋을 때는 1월이라고. 기온은 엄청 낮지만 추우면서 화창하단다. 이고리는 초등학생 때 조금 더 북쪽 지방에 살았는데, 백야 기간이면 해가 거의 지지 않고, 반대로 겨울에는 해가 거의 뜨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 건강에 좋지 않은 기후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백야 현상이 심한 북쪽 지방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 이른 나이에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고. 이고리의 아버지는 서른세 살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셨단다.


다양한 러시아 음식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다츠니키(Дачники)에 갔을 때도 역시 이고리가 알아서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것들로 시켜주었다. 이후 맥주를 마시며 러시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대화를 '나누었다'기보다는 내가 이고리의 강의를 듣는 것에 가까웠다. 한국학 전공자답게 러시아 역사와 한국 역사를 연결 지어 재미있게 설명을 해준 덕분에 러시아가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도 모르는 새로운 한국 술 게임도 알려줬고. 하루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를 보고 밤늦게 끝난다고 했더니 귀갓길을 걱정해주며 우버로 오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정보도 주었다. 밤 11시가 넘어도 환하길래 나는 결국 걸어서 가긴 했지만.


날이 긴 여름이어서 그랬는지, 한창 바빠서 야근도 많았는데 시간을 내서 뻬쩨르를 이곳저곳 소개해주어 정말 고마웠어, 이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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