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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돌아왔다 -쿠킹 위드 패리스

의외로 공감해 버렸어

by mig

습관처럼 저녁에 넷플릭스를 틀었다. 메인 화면에서 추천하는 것은 '쿠킹 위드 패리스'. 그 패리스 힐튼 언니가 요리 쇼를 한단다. 요리를 즐겨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나는 남이 요리하는 것도 찾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패리스 힐튼 언니라면 요리 쇼가 아닌 요리 프로그램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우선 첫 에피소드를 시작했다.


킴 카다시안과 함께 하는 브런치, 그리고 사와티와 함께 한 타코 나잇을 보고 나니 든 생각.

패리스 힐튼이 친구들을 불러서 친구들을 요리시키는 쇼구나!

물론 정말 불러놓고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시키는 형식은 아니다. 나름 준비가 필요한 메뉴들은 전날부터 거의 반조리 상태까지 만들어 놓기도 한다. 매 에피소드는 재료 준비부터 시작하는데, 파머스 마켓이나 Eataly, 정육점 등등에 쿠튀르 드레스와 글리터가 가득한 마스크를 쓴 패리스가 등장해 장을 보는 형식이다.


어디까지가 컨셉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 건지 모르겠지만, 시트콤을 보는 기분으로 금세 한 시즌을 몽땅 다 봐버렸다. 미국발 가십이나 연예계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시간 죽이기에는 최적인 듯 해 친구들에게도 마구 추천했다.

Glamour.de - Paris Hiltons Kochshow

볼거리 1. 패리스 힐튼의 집

쇼의 배경은 거실과 주방뿐이지만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의 거대한 집을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다. 나처럼 셀링 선셋 시즌 4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면 '집 좀 더 보여줘요!!!'라는 소리가 목구멍에 차오를 것이다. 메인이 되는 요리에 따라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매번 통째로 바꾸기 때문에 매 에피소드마다 마치 다른 장소로 탈바꿈한 다이닝룸을 볼 수 있다. 조명과 중심이 되는 색상 팔레트는 물론이고 소품 사용은 작은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아끼지 않는다. 제발 이 대궐 같은 집을 배경으로 다른 리얼리티 쇼 하나 더 찍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 개인적으로 온갖 글리터와 스프링클 등등 모든 요리를 더욱 "패리스 스타일"로 만들어줄 찬장이 부럽다.


볼거리 2. 화려한 게스트진

그녀가 초대하는 셀러브리티 친구이자 수셰프. 사위티, 렐레 폰즈, 데미 로바토, 니키 글레이저 등등 이름부터 화려하다. 첫 시작은 킴 카다시안이다. 함께 브런치를 만들면서 사는 얘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최근에 조금 뜸했던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면 늘 그렇듯이 함께 했던 추억 얘기를 하고 또 한다. 파티나 행사에서 만나 두어 번 본 것이 전부인 친구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 초대를 하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인 동생과 어머니를 초대하기도 한다. 요리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 순위지만, 서로 어렸을 적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물론 호스트인 패리스의 이야기가 주가 되지만, 손님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잘 끌어내기도 한다. 알 필요는 없지만, 알고 나면 소소한 재미를 주는 소재들이 가득하다. (사위티는 필리핀 혼혈이고, 렐레네 가족은 명절에 돼지를 직접 잡으며, 니키 글레이저는 어렸을 때 패리스 힐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일단 이 쇼를 시작하게 된 이유부터 엄마가 되고 가정을 꾸리고 싶어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패리스 언니의 다짐이다.


볼거리 3. 부지런한 패리스 언니

전문 셰프가 아니라 요리는 조금 서툴지만, 이 언니 참 부지런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금발 상속녀" 이미지를 최선을 다해 보여준다.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장면이 한가득이지만, 사실 패리스 "본체"는 얼마나 부지런하고 바쁘게 사는지가 느껴진다. 첫 에피소드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본 프리타타를 주말에 남자 친구에게 바로 해주기도 했다고! 과도하게 컬러풀하고 번쩍거리게 만든 레시피 책도 빼놓을 수 없다. 나처럼 종이에 뭔가를 쓰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 매 줄마다 색을 바꿔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패리스의 레시피 북은 하나의 포트폴리오처럼 보인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서 ‘핫’ 해야 한다는 것을 중시하는 패리스 언니, 중간중간 한 에피소드에서만 의상을 몇 번을 갈아입는지! "요리할 때 가장 불편한 쿠튀르" 리스트를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고심해서 연구한 듯하다. 최대한 치렁치렁하고 빛나고 움직이기 힘든 멋진 옷을 차려입더니 본격 재료 준비를 해야 할 때는 쥬시 꾸뛰르 벨벳 트레이닝 세트를 입는다. 요즘 대중문화에서 가장 핫한 것은 2000년대 스타일, 특히 패리스 힐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파파라치에 등장할 때다. 다시 돌아온 이 트렌드 속에서 "원조가 나타났다." 대중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했는지 치밀하게 분석해 각 장면을 연출했다.


볼거리 4. (의외로) 요리 정보

실제로 어떤 요리 팁을 배울 것이라 기대하고 이 쇼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얻어가는 요리 정보가 있긴 하다. 이건 내가 패리스보다 더 요리를 안 하고, 못 하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우선 중간중간 특정 식재료나 (토마틸로, 허브) 개념 (제스트), 주방 도구 (집게) 등등이 도대체 뭐냐며 질문을 한다. 그의 질문을 통해 나도 함께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근히 어렵지 않아 보여 쇼에 나온 요리들을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까놀로를 만들어도 반죽부터 만들어 튀기는 것이 아닌 시중에 파는 완제품에 크림만 만들어서 넣고, 전자레인지와 오븐만으로도 얼추 가능한 메뉴들이 나온 덕분이다. 요리 왕 왕초보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으로도 요리쇼의 역할은 톡톡히 했다.


볼거리 5. 나름의 공감대

나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사는 패리스 힐튼이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친근감을 준다. 고기나 생선 요리를 하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칠면조 통구이를 하는 에피소드에 크게 몰입했다. 분명 맛있게 먹으려고 사는 건데 문득 정육점의 신선한 고기가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도대체 칠면조 뒤로 온갖 과일과 야채를 채워 넣는 요리를 처음 생각해낸 남다른 이는 누구였을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오븐에 음식을 데우다가 시간 재는 것을 깜빡하기도 하고, 별거 아니지만 스스로 감자튀김 하나를 만들어 놓고도 뿌듯해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생고기가 무섭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며 고기와 생선 요리를 하지 못하는데, 생 칠면조 고기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패리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다음 시즌은 언제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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