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지금 오스트리아의 티롤 주에 있는 게알로스(Gerlos)에서 놀고 있는 중이다. 숙박에 음료를 제외한 두 끼 식사가 포함된 구성인 Halbpension으로 왔는데, 먹다가 탈 나는 줄 알았던 성대한 식사보다도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바로 이곳의 스파 및 웰니스 구역이다. 사우나에서 누워 깜빡 잠이 들뻔하다가 문득 떠오른 글감이라 두서없이 풀어보련다.
Wellness라는 단어의 뜻은 광범위하지만, 독일어에서 Wellness Hotel이라 하면 사우나와 스파가 포함된 호텔을 뜻한다. 여기에 수영장이나 부가적인 것들이 더해지기도 한다. Halbpension이 아닌 일반 웰니스 호텔은 이미 독일에서 가봤다. 왜냐면 나는 사우나, 아니 찜질방을 너무 좋아하니까.
독일 생활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꼽으라면 열 개는 족히 나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것이라면 나는 무조건 독일의 온천 사우나를 꼽는다. 꼭 웰니스 호텔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주말에 날을 잡고 온천에 가서 하루 종일 놀다 온다. 이를 잘 아는 독일 친구들은 오죽하면 내가 독일에 살기 위해 왔을 때, 환영 선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온천 입장권을 줬다.
독일 생활이 길지 않고 코로나 락다운도 겹쳐 사실 직접 가본 온천은 네다섯 군데 정도다. 입장권 선물까지 받았던, 가장 좋아하는 Bad Wörishofen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가보고 싶은 뮌헨 근처 온천 사우나가 세 곳 정도 있는데 (에딩 제외), 온천 사우나들이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올 가을 겨울에 가볼 예정이다.
독일 생활의 하이라이트인 온천 사우나 중에서도 그 꽃은 단연 Aufgusszeremonie, 줄여서 Aufguss다. 사우나 안에 뜨겁게 달구어진 돌에 아로마 농축액이 섞인 물을 부어 순간적으로 공기 온도를 높이는 것이다. 보통 정해진 시간에 Saunameister가 Aufguss를 진행하는데, 물을 부은 직후에는 커다란 수건이나 깃발로 공기를 휘저어 전체적으로 온도가 같아지게 만든다. 호텔 안에 있는 작은 사우나의 경우에는 스스로 Aufguss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각 온천마다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야외 온천 구역에서 수압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 온천탕 안에 칵테일 바가 있는 곳,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워 통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 야자수 밑에 누워 해변가 느낌을 낼 수 있는 곳, 겨울에 더욱 빛을 발하는 모닥불이 있는 윈터 가든... 물론 목욕뿐 아니라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마사지나 태닝, 적외선 관리 등등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중간중간 마사지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사우나 쪽으로 오면 더욱 다채로워진다. 사우나가 여럿이 있는, 규모가 좀 큰 곳에는 각 사우나 별 프로그램 스케줄표가 있다. 사우나 자체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다양할 뿐 아니라 Aufguss 방식, 아로마 향까지 적혀 있어 원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사우나에 시간 맞춰 가면 된다. 온몸에 꿀을 바르고 땀을 빼는 방, 다 같이 얼굴에 마스크 팩을 하는 방, Aufguss 하는 동안 사우나 안에 있는 오븐에서 빵을 구운 뒤 나중에 먹는 방 등등 나는 활동 자체가 재미있는 사우나를 선호한다. 사우나 방 인테리어와 컨셉이 흥미로운 경우도 있는데, 조각상들과 이국적 패턴이 가득한 로마 컨셉의 방,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을 보며 주기적으로 커다란 징을 울리는 일본 컨셉의 방이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본디 널리 알려서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 하지만 이 독일 온천 사우나는 무작정 널리 널리 추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바로 남녀 혼성이라는 점 때문이다. 독일 친구들 중에는 온천에 가는 것 자체를 너무 정적이거나 노년층의 활동으로 생각해 즐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면 한국 친구들은 남녀 혼성이라는 점이 장벽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부제에도 썼듯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벗은 몸이라 봐야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어차피 온천욕 하러 온 곳인데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규모가 작은 온천이거나 호텔의 일부인 경우에는 다들 알몸으로 돌아다니곤 하지만,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이동을 할 때는 목욕 가운을 입는다. 사우나 방 안에 들어가서 일단 앉고 나면 공기의 열기와 나의 땀방울 정도 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 가질 시간도 없다. 나는 처음으로 독일 사우나에 갔을 때도 남녀 혼성이라는 것에 별 생각이 없었고, 신나게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온천과 사우나를 즐기다 왔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이 심리적 장벽이 꽤 클 수도 있고, 너무 그 부담이 크다면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독일 온천 사우나에 갈 필요는 없다. 재미있으려고 가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