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두 단어가 있다.
Datenschutz (정보 보호)와 Privatsphäre (사적 영역)
독일에는 아직 이 두 가지 개념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본인이 사는 건물 사진이 구글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모자이크 신청을 했는데, 그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골목 구석구석을 스트리트 뷰로 누비다 보면, 양 옆이 높은 모자이크 벽으로 된 미로를 통과하는 기분이다.
물론 이 점이 독일 사회의 디지털화 속도를 늦춘다는 비판도 있다. 개인 정보가 수집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그 흔한 포인트 적립 카드도 만들지 않고, 스마트폰에 본인의 건강 관리 정보 (걸음 수, 생리 주기 등등)를 절대 입력하지 않기도 한다. 뮌헨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는 본인이 사는 구역에 인터넷이 가능한 통신용 전봇대를 설치하지 말라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처음 그 플래카드를 봤을 때는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지 몇 번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독일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은 참 재미있다. '문화 충격'이라 이름 붙일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살짝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 일 년 반이 되어가는 팬데믹 재택근무 기간 동안에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화상 회의 시 카메라를 켜라고 강요할 수 없다.
몇 주만 하다 말 줄 알았던 전면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동료들은 슬슬 회의에서 카메라를 켜지 않기 시작했다. 애초에 모두가 다 카메라를 켜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마도 다들 점점 잠옷이나 편한 옷을 입은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예상만 할 뿐이다. 그리하여 몇 주 되지 않아 전체 회의를 할 때는 부문장 이외에 아무도 카메라를 켜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회의를 한 지 일 년 정도 되었을까, 하루는 부문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에게 이걸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만약 전체 회의 때만이라도, 카메라를 켜도 괜찮은 상황인 경우에 있는 동료들이 카메라를 켜줘서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내가 조금 덜 외롭게 느낄 것 같아."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켜줬으면 하는 메시지다. 다만 최대한 명령형으로 느껴지지 않게 돌려서 전달했다. 반년이 넘는 락다운과 거리 두기 정책을 거치면서, 깜깜한 화면을 보면서 혼자서만 말을 하는 것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부문장의 위치 상 전체 회의에서 전하는 말은 정보 공유가 대부분인데, 카메라를 켜면 적어도 사람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 짓는 것이라도 볼 수 있으니 그 차이는 아주 클 것이다.
비슷하게, 사무실 출근 역시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다.
팬데믹 이전과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회사를 포함해 다른 회사들 역시 팬데믹 이전에도 재택근무가 있기는 했지만, 총근무일의 몇 %라든지, 한 달에 총며칠이라든지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독일은 작년 여름에 잠시 여러 규제가 느슨해졌고, 올해 여름인 지금 역시 백신 접종과 함께 많은 규율들이 사라졌다. 우리 회사의 사장단은 전 직원 대상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이미 여러 번 사무실 출근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 회사의 문화와 직원 간 소통을 위해서는 회사에 출근해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전 직원에게 설문조사를 돌려 재택 및 현장 근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재택근무 일수 역시 물었다. 결과에 따라 각 부문별로 각자 규칙을 정해 가을부터는 조금씩 사무실 출근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공지가 위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학습된 수긍력으로 '위에서 그렇게 정해졌구나.' 하고는 별다른 생각을 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회사에서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 역시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출근을 원치 않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말을 하면 된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한국에서라면 '말만 그렇게 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회사는 직급과 상관없이 누구와도 '네고'가 가능하다. 가을부터 주 2회 출근이 확정된 한 친구는 집이 멀어 출퇴근 시간을 버리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전체 팀 미팅이 있는 날에만 주 1회 출근을 하겠다고 팀장에게 말했고, 당연히 그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또, 백신 접종 여부를 물을 수 없다.
독일 전체적으로 접종률이 늘고 있어 (8월 24일 기준 독일 거주자의 약 60%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회사에서는 슬슬 단계적으로 직원들의 사무실 출근에 준비하고 있다. 손 소독제 비치와 마스크 제공, 공간 내 인원 규제와 사람들 간 간격 등등의 규칙이 제대로 지켜진 환경에서는 원하는 직원은 누구나, 언제나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규칙들은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과 아닌 사람, 또는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인 경우에도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의 백신 접종 여부를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주정부의 백신 센터에서는 기저 질환이나 직군, 나이 등에 따라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 우선순위가 무색하게도 인맥이 좋거나, 정보가 있거나, 발품을 더 많이 판 사람이 백신을 더 빨리 맞을 수 있었다. 주변 지인들의 사례를 보면 백신을 맞고 싶은 의지가 확실한 경우, 보통 올해 봄-여름에 다들 백신을 맞았다. 나는 회사 동료들 역시 적지 않은 수가 백신을 맞았다고 예상하고는 있다. 하지만 작년 초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던 동료 몇몇도 떠오르기 때문에, 사실 누가 백신을 맞았을지, 또는 누가 실제로 걸린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점은 회사 차원에서 직접 Privatsphäre (사적 영역)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직원의 개인 정보를 물을 수 없다고 명시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입사 초반, 회사 단체 후드 티셔츠를 맞춘 적이 있는데, 직접 사이즈별 티셔츠가 놓인 인사팀의 공간으로 가서 모두가 직접 입어본 뒤 사이즈를 골라 가져올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후에 전사적으로 진행된 개인 정보 교육에서 본인의 의류 사이즈 정보를 회사에 제출하는 것 역시 회사의 개인 정보 수집에 해당된다는 점을 배웠다.
이렇게 나의 개인 정보를 대접(?)해주는 경험이 반복되니, 전에는 몰랐던 내 개인 정보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야기가 길어 영상으로도 만들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