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서 24시간

by m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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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는 가깝기 때문에 육로 이동으로도 많이 여행한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서 남미로 넘어가기 전 하루 스탑오버를 하는 것. 러시아에서 남미로 어떻게 넘어가느냐 고민을 꽤 했다. 항공사 종류가 다양한 만큼 스탑오버 선택권도 넓은데, 다 나름대로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핀에어로 결정하고 처음으로 핀란드에 가보기로 했다. 뻬쩨르에서 헬싱키까지는 저가항공인 것 같은 Nordic Regional Airline을 탔는데, 지금껏 타본 비행기 중에 가장 작았다. 맨 앞에 앉은 승무원과 마주 보면서 갔다.


내가 핀란드에 대해 아는 게 뭐더라. 자일리톨, 산타 마을, 블루베리, 마리메꼬, 이딸라? 하루도 채 머물지 않는 짧은 일정이지만 가기 전 헬싱키에서 사는 사람이 쓴 책도 읽었다. 그 짧은 비행시간 와중에 블루베리 주스를 주문해 마셨고 종이컵과 냅킨이 모두 마리메꼬인 것에 감탄했다.


제대로 여행을 하는 곳이기보다는 잠시 있다 가는 곳이니 당일 공항 근처 적당히 가까운 숙소를 예약했다. 아이슬란드 요거트라는 skyr 그리고 말린 호밀 크래커 같은 Hapankorppu를 간식으로 먹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자연히 하고 싶은 것들을 간략하게 추리게 된다. 마침 내가 헬싱키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저녁. 해도 긴데 밤 시간을 활용하고 싶었지만, 일요일이라 문을 연 곳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월요일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한적한 분위기였다. 서울이 얼마나 인구 밀도가 높은지, 밤에도 주말에도 얼마나 활기가 넘치는 곳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시장 구경하기. 하카니에민 카우파할리 재래시장 (Hakaniemen Kauppahalli)에 가기 위해 트램을 기다렸다. 숙소에서부터 시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게 더 빠르고 노선도 많지만, 느긋하게 트램을 기다려서 천천히 가기로 했다. 평소 일상을 효율적이게 보냈으니 여행을 할 때만은 일부러 시간이 더 걸리고 효율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트램에서 아침을 먹은 것은 아니지만, 여행할 때 종종 찾아 듣는 Breakfast on the Morning Tram이라는 노래도 틀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에서는 구경을 하다가 베리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알이 작은 블루베리와 알이 큰 것이 있었는데, 각각 시식을 해 보고도 차이점을 느끼지 못해 결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매대의 아주머니께 조언을 구하니 알이 작은 것이 블루베리가 핀란드산이라고, 더 진짜라고(!) 하셨다. 대신 알이 큰 것은 주변이 지저분해지지 않게 먹을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주기 좋다고. 시식도 하고 조언도 구했지만 결국 나는 반반의 민족이니 알 크기를 고루 섞어 구매했고, 옆에 있던 라즈베리도 함께 샀다. 올드 마켓 홀에 가서도 이것저것 구경하고, 보이는 단어를 읽어보려고 해 보았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느 언어와도 비슷하지 않아 읽어보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러시아에 비하면 라틴알파벳이라 읽을 수 있는 것이 어딘가.


배를 타고 수오멘린나 요새 (Suomenlinna)로 가서 자연을 느끼며 산책도 하고, 핀란드 친구가 "그냥 서점"이라고 기대치를 낮추어 놓았던 아카데미아 서점 (Akateeminen Kirjakauppa)에도 방문해 읽지 못하는 책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한 친절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디자인 구역을 걸어 다니면서 눈호강도 했고, 몇 끼 안 먹었지만 핀란드 물가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무민과 마리메꼬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헬싱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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