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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Sep 29. 2021

옥토버페스트를 싫어하는 독일 사람들

'독일 사람들' 보다 '바이에른 사람들'이 더 적합하겠다. 주변 독일 친구들은 대부분 옥토버페스트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일에 살러 오기도 전에 의심병이 도져 '그렇게 별로란 말이야?' 하는 반발심에 독일에 도착한 바로 그다음 날 옥토버페스트 구경을 가기도 했었다. (마침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시기가 옥토버페스트가 끝날 무렵이었다.)


바이에른 주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이맘때 즈음 폴크스 페스트(Volksfest) 열린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하게 추수기를 보낸  맥주도 마시고  함께 먹고 노는 축제다. 그중 뮌헨에서 열리는 폴크스 페스트에는 옥토버페스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따라서 9 중순부터 10 초에는 바이에른의 어느 소도시에 가도 비슷한 맥주 축제를 즐길  있다. (옥토버페스트는 원래 이름처럼 10월에 열리다가 나중에 9월로 당겨졌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도시가 같은 기간에 하는 똑같은 축제가 있는데,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과 비슷하다.


내가 가장 '바이에른스러운' 사람들을 만나는 곳은 회사인데, 이 기간이 되면 동료들은 아예 회사에 디언들 (여자용 전통 의상)을 챙겨 와 퇴근 후 갈아입고 바로 옥토버페스트로 향하기도 하고, 매년 새로운 디언들을 입어보고 쇼핑하는 것이 점심시간 수다의 큰 화두가 된다. 물론 뮌헨에 있는 다른 회사들처럼 옥토버페스트에서 전체 회식도 한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행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바이에른 출신이 아닌 친구들은 대부분 '너무 과대평가된 이벤트'라는 의견이다. 아무래도 지역색이 강한 축제이니, 이 자체에 무관심한 경우가 압도적이긴 하다. 물론 그냥 바이에른에서 온 건 다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맥주를 그 돈 주고 마시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옥토버페스트를 싫어하는 바이에른 출신 독일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의견을 들어보았다.


A는 옥토버페스트를 적극적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굳이 갈 이유를 못 찾는 데에 가깝다. 그게 열리는지 마는지,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뮌헨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거리를 통근하는 친구인데, 따라서 뮌헨에 정서적인 애착이 그리 크지 않다. 어차피 하는 일이 친구들과 바이에른 전통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것이라면, 사람이 훨씬 더 적고 맥주 값도 저렴한 작은 비어 가든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뮌헨 근교 출신이기 때문에 옥토버페스트가 팔고 있는 '뮌헨, 바이에른스러움'이 그에게는 전혀 색다르게 다가오지도 않는다고. 더불어 뮌헨 근교에 산다는 죄로(?) 옥토버 페스트 기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가 항상 취객들로 가득 차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고 한다.


B는 옥토버페스트를 '극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조상 대대로 뮌헨 근교 출신인 이곳 토박이다. 부모님들도 음악을 하셨고, 본인도 음악에 조예가 깊은 친구인데, 옥토버페스트에서 트는 소위 '마셔라 마셔라' 노래류를 듣게 되면 치를 떤다. 시끄러운 것 역시 아주 싫어한다. 게다가 그는 맥주를 몇 리터씩 마시고는 취하는 행태를 멍청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술의 종류는 상관없지만, 마실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전체적으로 그의 이런 강한 반발심은 옥토버페스트가 모든 면에서 그의 스타일과 정반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C는 고향의 Trachtenverein, 곧 바이에른 전통 보존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멤버이다. 유일하게 바이에른 전통 의상을 갖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가 옥토버페스트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과도하게 상업화된 모습 때문이다. '진짜 바이에른 전통'이나 '뮌헨의 전통'은 없고 시끄러운 놀이 기구들과 온갖 주전부리를 다 파는 매대들로 가득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뮌헨 자체는 전통 의상의 역사가 짧고 자체 의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미스바흐나 테간제 등 뮌헨 근교의 전통 의상을 입고 온다. 물론 어느 곳의 전통 의상 인지도 모른 채로 입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일 것이다. 바이에른 전통문화 보존에 누구보다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그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D는 바이에른에서 나고 자랐고, 강한 사투리도 꽤 알아듣고 구사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정체성을 바이에른과 강하게 연결 짓지는 않는다. 이민자 가정 출신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3세대이기 때문에 이 친구는 독일 외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바이에른 시골의 독일 할머니에게 자랐기 때문에 본인이 알고 겪은 문화 역시 이곳 문화밖에 없다. 그럼에도 본인을 전체적으로 바이에른 출신보다는 독일 출신으로 여긴다는 점이 신선했다. 보통은 그 반대이기 마련이라. 이 케이스를 통해 어느 집단의 강한 결속감이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배타적이게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름도, 생김새도 이국적인 이 친구가 바이에른의 시골에서 자랄 때 '나도 우리들 중 하나'라는 생각을 더 했을까, '나는 얘네들과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더 했을까.



뮌헨은 작년과 올해, 테레지엔비제 (Teresienwiese)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를 취소했다. 대신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는 여섯 개의 양조장 (아우구스티너 Augustiner, 하커 쇼어 Hacker-Pschorr, 호프브로이 Hofbräu, 뢰벤브로이 Löwenbräu, 파울라너 Paulaner, 슈파텐 Spaten)의 자체 직영 음식점에서 뷔어츠하우스 비젠 (WirtshausWiesn)을 연다. 뮌헨 곳곳에 있는 비어 가든에서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만 파는 맥주와 재미난 공연을 즐기고,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 구경도 할 수 있다. 꼭 이 공식 맥줏집이 아니어도, 시내에 나가면 술을 파는 모든 곳은 이미 옥토버페스트 분위기이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온 길거리와 대중교통이 북적이던 이전과는 다르지만, 중심가에는 저녁이 되면 바이에른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Koa Wiesn

'노 옥토버페스트'라는 뜻의 바이에른 사투리다. 팬데믹으로 2년 연속 옥토버페스트가 취소되자 이 문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Koa Wiesn 2,0이다. 옥토버페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분위기에서 좋아하는 것을 먹고 마시며 이 기간을 보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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