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되너 케밥(Döner Kebab)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주로 밥과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왠지 다른 것이 먹고 싶어질 때. 그렇다고 빵이나 묵직한 바이에른 음식이 먹고 싶지는 않을 때.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야채를 먹고 싶을 때. 아니면 그 짭조름하고 매콤한 맛이 그리울 때.
독일판 짜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의 대표 음식 (!) 되너 케밥은 독일 그 어느 곳에서도 인기가 많다. 성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학생 할인 되너' 메뉴도 있다. 끼니를 때우기에도, 늦은 밤 해장이나 파티 마무리로도 적합하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야채 되너도 있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면 예쁜 카페처럼 생긴 되너 집도 볼 수 있다. 각 도시의 중앙역은 물론이고 시내 번화가에는 꼭 적어도 되너 집이 한 곳은 있다.
기본적으로 되너 집의 메뉴는 다음 세 가지다. 동그란 빵을 반으로 갈라 그 사이에 고기와 야채, 소스를 넣은 되너 (Döner). 얇고 둥근 빵에 내용물을 넣고 랩처럼 말아서 만든 뒤륌 (Dürüm). 구운 빵 빵 위에 매콤한 소스를 바른 뒤 고기와 야채를 넣은 라마춘 (Lahmacun). 재미있는 건 이 중 라마춘은 아랍 문화권의 음식으로, 정작 터키에 들어온 건 50년대 후반이라고 한다.
하루는 점심을 때우기 위해 집 근처 가까운 되너 집으로 갔다. 되너 하나와 라마춘 하나를 주문한 뒤 음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서 메뉴판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조심스레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저기.. 뒤륌이 뭐예요? 되너랑 다른 게 뭐죠?"
곧 라마춘을 먹을 생각에 신나서 딴생각을 하던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누군가 케밥집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걸 것이라 미처 생각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독일 사람이 나에게 케밥에 대해 물어봐서였을까. 곧 정신을 차리고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되너와 뒤륌의 차이점을 이러하다고 아주머니께 설명을 드렸다.
"아! 그런데 혹시 아까 라마춘 시키셨죠? 라마춘은 또 뭐예요?"
이번에는 멍 때리고 있던 상태는 아니었지만 사실 내심 놀랐다. 독일에 사는 사람이 되너와 뒤륌, 라마춘의 차이를 모른다구? 독일에 단 며칠 여행을 왔다 간 친구들도 아는 걸?
물론 그런 생각을 한 티를 내지는 않았고, 간단하게 세 메뉴의 차이를 설명해드렸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주문한 되너와 라마춘이 나왔고,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라마춘 하나를 주문하셨다.
따끈한 라마춘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울에서의 내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일지라도, 한국에 있지만 잘 모르는 다양한 문화와 세상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는 해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뒤집어 오히려 한국 토종이라는 점을 내세우는 농담을 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 내가 평생을 산 고향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서울에도, 2박 3일 여행으로 다녀간 어떤 여행객보다도 내가 훨씬 모르는 부분이 있겠지?
"말린 되너랑 터키식 버터밀크 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뒤륌(Dürüm)'과 '아이란 (Ayran)'을 모르는 사람을 놀리는 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