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회식은 안 가도 된다
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왠지 “회식 없는 회사”는 좋게 들린다. 그럼 독일 회사는 회식이 없을까.
Jein,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선 독일의 가장 큰 명절을 맞아 크리스마스 회식이 있다. 보통 회사마다 다들 하는 Weihnachtsfeier는 회사 외부에서, 그리고 저녁 시간에 한다. 물론 진짜 크리스마스 기간은 2-4주씩 휴가를 쓰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크리스마스 회식은 보통 12월 초나 중순에 한다. 하지만 그래도 모두가 다 오는 것은 아니다. 필수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안 가도 상관없다. 우리 팀 시니어는 그날 쿠킹클래스를 간다고 안 왔다.
우리 회사는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자주 하고, 같은 부문이라도 출퇴근 시간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부문의 직원들이 다 함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다. 그나마 작은 단위인 우리 팀만 해도 네 시 정도부터 퇴근을 하기 시작하니 저녁 회식은 상상도 못 한다. 크리스마스 회식에도 사실 직원들 중 3분의 1 정도밖에 안 왔기 때문에 우리 부문은 따로 그전에 크리스마스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얼마 전에 모기업인 otto 오퍼레이션 컨설팅 팀에서 주최한 워크숍이 있었는데, 우리 부문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고 모두가 더욱 동기 부여가 되며 일터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전체 팀원이 논의를 했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행 계획도 바로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6주마다 한 번씩 아침을 같이 먹기로 하는 것이다. 담당자들을 정하고 돈을 걷어서 함께 시간을 정했고, 그 첫 아침 회식이 오늘이었다. 회사 루프탑에서 뷔페처럼 음식을 깔아 놓고 먹는데, 독일 슈퍼마켓 물가가 싼 덕분에 1인 당 5유로를 내면 세 번의 아침 회식이 가능하다.
이건 우리 부문 아침 회식이고, 전사 차원에서도 한 달- 한 달 반 정도에 한 번씩 운영 투명성을 위한 전체 미팅 및 보고가 있다. 아침을 먹으면서 루프탑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맛있는 빵과 커피 먹을 생각에 신나서 가게 되는 보고이다. 사장단의 최근 이슈와 회사의 전략적인 방향 또는 인사팀의 새 프로젝트 등 전사 차원의 소식들을 전하고 공유하는 자리이다. 모든 새 직원들은 여기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각 5년과 10년 근속자들은 여기에서 선물과 함께 공개 감사 메시지를 받는다.
오늘 아침 회식에서는 같은 부문이지만 다른 층에서 일하는, 다른 제품군을 다루기 때문에 일적으로 이야기를 할 일이 없는 팀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얼마 전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팀원과도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야기를 했는데, 이 회사에 다닌 지 8년이 넘었다고 한다. 10년 차인 우리 팀장과 이야기할 때처럼 작은 회사 시절 이야기도 좀 들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우리 팀은 팀장님부터 모든 팀원들이 저녁 회식 + 음주 극혐이라 애초에 저녁 회식이 없긴 했다. 주기적으로 점심 회식을 했는데 사무실 위치 덕분에 청담동과 한남동의 맛있는 레스토랑들을 회사 돈으로 맘껏 다녔다. 다만 대기업 특성상 전사 단위의 행사가 있을 때면 본사의 아저씨들(..)과 함께 하는 전형적인 회식 - 고기 굽고 술 마시는 - 을 하거나 전국의 매니저들과 함께 하는 그러한 회식이 있기도 했는데, 그것도 일 년에 많아야 한 두 번이라 막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딱히 회식 트라우마도 없지만 그래도 아침 회식은 좋다. 맑은 정신에 가벼운 음식 먹어서 좋고 평소 왕래가 없는 팀원들과 소통한다는 취지에도 맞아서 좋다. 그리고 그 김에 오늘 다 같이 네 시 퇴근해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