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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Oct 05. 2021

독일 사람들은 영어를 잘할까

진리의 사바사

왠지 "독일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독일어를 굳이 많이 배우지 않아도 되며 영어만으로도 웬만한 생활과 구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독일 오기 전 나의 생각. 


물론 후자의 경우는 독일 내 지역에 따라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물론 온갖 행정적인 일을 처리해야 될 때나 일상에서 크고 작게 부딪히는, 독일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지만. 전자의 경우는 사실 영어를 '잘한다'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내 주변의 작은 표본을 놓고 일반화해버린다면 오히려 한국 친구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뭘까. 시험 점수나 문법 오류, 어휘량 등으로 어떻게 선을 그을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들에게 살갑게 말을 걸고 친구가 되는 데에는 사실 그마저도 큰 의미가 없다. 당장 맥주를 호프라고 말하는 아빠만 봐도 나 없이 남편과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된다. (물론 남편이 '호프집'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어 맥주와 바로 연결시킬 수 있긴 했지만) 그러니 뭐, 결국은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가 직장을 구해 뮌헨으로 오게 되었다. 아직 수습 기간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벌써 시내에 집도 구했고, 거주 등록도 끝내 정말 뮌헨 거주자가 되었다며 잔뜩 신나 했다. 이 친구는 내가 독일로 온 지 채 두 달도 안 되었을 때 알게 된 나의 첫 친구들 중 하나다. 김치도 모르던 이 친구를 한국 식당에 데려도 가고, 그 친구의 집에도 놀러 가곤 하며 함께 친구인데 오랜만에 뮌헨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회사 생활을 제외한 나의 모든 의사소통은 비독일어로 이루어진다. 독일 친구들은 내가 독일어 학원을 가기도 전에 알게 된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영어로 소통한 시간이 길고, 그대로 굳어졌다. 시댁 가족과도 역시 소통 언어는 영어다. 독일어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B1 준비반까지만 들어서 그런지, 서로 독일어로 소통하기에는 영어나 스페인어 등 다른 언어가 피차 편하다. 한국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이 친구 역시 나와는 서로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팬데믹 전에 만난 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에게 "나 그 이후에 독일어 학원도 갔고, 일도 구했으니 이제 나한테 독일어로 말해도 좋아."라고 말을 했다. 참고로 이 친구는 부모님이 큰 농가를 갖고 있는, 바이에른 시골 동네 출신이다. 혹시 자기 사투리가 너무 심하면 영어로 바꿀 테니 말을 해달라고 하고는, 나와 처음으로(!) 독일어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이 사투리인지 계속 궁금해했다. 귀가 그냥 사투리 억양에 적응했나..)

"나 사실 너를 만나고 거의 처음으로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본 거였어."

????

학교에서 물론 배우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누구와 영어로 소통을 해본 적도,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다는 말이었다. 못 만난 동안 팬데믹 전에는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때 영어 배우기를 최우선 순위에 놓았고, 다국적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나마 영어 대화에 대한 장벽이 많이 사라졌다고. 이 친구는 태국 혼혈인데, 바이에른 시골에서 자랄 때는 그 점이 항상 자기를 너무 남들과 다르게 만드는 점이었다면 교환학생 시절에는 덕분에 독일인들 그룹에도 껴서 놀고, 아시안들 그룹에도 껴서 놀았다며 자기의 다양성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통역가로 일하시는 어머니가 독일어를 충분히 너무 잘하신 덕분에 지금 태국어를 읽을 수조차 없고, 기본적인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점이 이제야 아쉽게 느껴진다고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영어도 잘하신다.) 


재미있는 건 몇 년 전에 내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그래도 최고의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 몇 달간의 교환학생 경험에서 느낀 점들이 많았는지 그 이야기를 한참을 했고,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관심이 더 커져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이 했다. 단순히 음식이나 대중문화 얘기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면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해서 얘가 정말 알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자기 친가 가족들은 온갖 성인병 질환이 있는데 외가 가족들은 다들 동안에 건강하고 장수한다며 그건 음식 덕분이라며..!)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넘고, 덕분에 더 넓은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진 친구의 모습을 단계별로 지켜본 느낌.

우리 회사에도 영어를 두려워하는 동료들이 있고, 대학 수업에서 영어 발표를 부담스러워하는 독일 학생들이 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해야 할 상황이 되면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할 수 있다면, 더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다는 입장. 한 동료는 함께 하던 사내 프로젝트가 폴란드 지사를 포함하게 되면서 영어를 써야 할 일이 많아지자 아예 그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도 했다. 

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독일 내에서 알게 된 독일 친구들은 대부분 다들 나를 만나기 전에는 영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새삼 그 친구들에게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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