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ste Hilfe Kurs (M-A-U-S)
독일에서 처음 접한 응급처치 교육은 회사에서였다. 알고 보니 여기에서는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때마다 맞는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운전면허를 따야 할 때도 이 응급처치 교육이 필수. 타이밍이 잘 맞으면 이렇게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학교에서 받은 응급처치 교육을 인정받아 운전면허를 따기도 한다고. 나는 이 수업을 듣는 것이 필수는 아니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신청해보았다.
내가 들은 수업에는 총 열다섯 명이 참가했다. 대부분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수업을 들었는데, 자동차 운전면허인 경우도 있고 오토바이나 트럭 운전면허를 위해 수업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아이는 사실 이미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어서 똑같은 곳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이미 받았단다. 그런데 3년 전쯤인가 이 응급 처치 교육 커리큘럼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이 교육을 다시 들어야 해서 또 왔다고. 그리고 직업적으로 전문 응급구조대인 사람들도 왔는데, 그 사람들은 2년마다 이 코스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수업은 독일어로만 진행되는데, 독일어 이해가 조금 힘든 경우에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절반 조금 안 되는 정도가 외국인이었고, 처음부터 "나는 독일어로 이해하는 게 좀 힘들다"라고 말하고 시작한 분도 있었다. 그분은 딸이랑 함께 와서 따님이 중간중간 통역을 해주시더라.
장장 일곱 시간 반이 되는 수업. '설마 이 시간을 다 쓰겠어?' 했는데 정말 다 썼다. 그래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었고 (코로나 이후로는 더 자주 쉬는 시간을 갖고 주기적으로 밖에 나갔다 오는 시간을 가져야 한단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혼자 주르륵 수업 내용을 읊는 방식이 아니라 은근 시간이 빨리 갔다. 다루는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시간 자체가 길게 느껴지긴 했지만.. 장소는 한 호텔의 세미나룸이었는데, 그래서 발코니나 화장실이나 장소 자체는 쾌적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자동차 및 오토바이 사고 상황 대처부터 시작하고, 이후에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의 대처 방법을 배운다. 칼에 베였을 때, 신체 일부분이 부서지거나 잘렸을 때, 신체에 뭔가 박혔을 때, 당뇨환자가 당이 떨어져서 쓰러졌을 때, 불에 데었을 때, 강한 산성 약품에 노출되었을 때, 그리고 더위를 먹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 한 서너 가지..? 더위 관련된 게 너무 많아서 나중엔 헷갈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대머리인 학생을 콕 집어서 너 같은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두피에 햇빛이 직접 닿으니) 했다.
수업 내용과 상관없이 조금 놀란 부분.
각자 다른, 총 열몇 가지의 상황 설명이 적힌 프린트를 받아서 각자 책자와 함께 공부를 하고, 그 케이스를 한 명씩 앞에 나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 중 두 명이 본인은 글을 못 읽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래서 각자 옆에 앉은 사람들이 대신 글을 읽어줬다. 그들이 문맹이라는 사실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니다. 그들이 수업 초반에 독일 출신이 아니라거나 독일어를 아직 잘 못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말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독일 사람인 줄 알았다. 아, 독일 사람인데 글을 못 읽을 수도 있겠구나.
이 시국이라 특이한 것 같았던 부분.
아주 마지막에는 롤플레이도 있었고, 원래는 짝을 지어서 직접 실습을 해보거나 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특별한 상황에 이 수업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같이 온 친구들이나 커플이 아닌 개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접촉을 전혀 하지 않도록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롤플레이 자체도 한 명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 상황 -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거리를 두고 서서 말로 말해주는 방식으로 했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인체모형의 얼굴 커버를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때마다 다 소독된 새것으로 갈아 끼웠고, 모든 실습은 다 장갑을 끼고 한 명씩만 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 한 롤 플레이 중 쇼핑몰에서 한 사람이 쓰러진 상황 연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 포함 몇 명을 불러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사진 찍는 역할을 하라고 했고, 선생님 본인은 쓰러진 사람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연출을 해서 조금 소름이었다. 충분히 있을만한 일 같아서. 그래서 특히 여러 명이 폰으로 그런 상황을 찍고 있을 때면 그 사람들을 막거나 제지시키려고 하기보다는 환자에게 집중하고, 폰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집어서 "거기 너 폰 있으니까 신고 전화 좀 해라." "거기 너 여기 와서 여기 좀 잡아줘라." 등등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거절하거나 모른척하면 바로 그날 저녁에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죽일 놈으로 바이럴 된다고.
생각보다 생명이 위협적인 극한적인 상황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활밀착형 케이스로 알려줘서 재미있었다. (친구들이랑 놀다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맥주 박스나 맥주병을 이용하는 방법, 차가운 물이나 음식을 주고 안정 상태로 눕히기만 해도 나아질 수 있는 상황 등등) 물론 여기서 배운 것들을 써먹을 일이 없는 상황이 최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