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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Oct 14. 2021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한국에서는 그래도 꽤 괜찮은 직장, 직무였지만 당시 나는 그것 말고 다른 시스템은 상상해 볼 수도 없었다. 그리는 모습이 있다면 꿈이라도 꾸겠지만 그때 나는 그냥 내가 있는 환경과 상황 말고는 몰랐고, 그 덕분에 '다른 환경에서도 일해보고 싶어'라는 강력한 동기가 생겼다. 그 힘으로 첫 해외 생활에 도전하게 되었으니 그때의 '다른 나라 회사 생활이 궁금해..!'라는 호기심이 지금 상황을 만든 첫 번째 씨앗이라고나 할까.


독일로 오고 나서 가장 바닥부터 바뀌었던 사고의 전환이 바로 '일'에 대한 것이다. 중간에 한국과 독일의 중간 정도인 중국 회사 생활을 잠시 경험해 본 덕분도 있다. (베이징에서 만난 독일 회사 공채 친구들이 "자기 일 끝났으면 가면 되지, 왜 꼭 여섯 시까지 앉아있다 가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나마 여섯 시에도 못 갈 수도 있어 ^^^..."라는 대답을, "회사 사람은 회사 사람이지, 동료랑 친해져야 한다는 문화가 이해가 안 돼."라는 말에는 "내 10주짜리 신입사원 연수 이야기를 좀 들어볼래..^^^"로 한국 경험담을 공유해 줌.) 한국과 조금 비슷한듯하면서도 유연한 출근 시간, 상사들에게 따로 인사를 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중국의 문화로 준비운동을 하고(?) 독일 친구들 및 당시 우리 부서 임원인 스위스 분이 해주신 유럽의 직장 문화를 듣고 난 뒤 드디어 독일로 왔다.

물론 단순히 독일로 위치를 옮겨서 큰 변화가 온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물론 팬데믹 이후 풀 재택근무를 하면서부터다. 일을 하는 시간보다 안 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 한국에서 생각했던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 or 사무실이니까...'이라는 전제부터 깨졌다. 산업군과 직무를 바꾸면서 급한 상황이나 큰 변화가 없는 환경이 된 덕도 있다.


독일에서 일한다고 모두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회사나 산업군에 따라서, 또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다른 직장 생활을 한다. 전통적인 독일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도 승진을 제쳐두고 주 30~35시간의 업무 시간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발적 야근까지 해가며 밤낮 주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다. 커리어적으로 욕심이 나는 자리를 얻게 되었다면 워라밸을 포기할 수도 있고, 아무 곳이나 따박따박 돈만 나오면 된다는 입장도 있다. 한국인과 독일인의 차이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본인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 선택지가 참 좁았거나, 없었다.


연봉을 낮추더라도 하고 싶은 분야로 가기. 이제는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막상 선택권이 왔을 때 쉽게 골라지지는 않는 방향이다. 이직의 기회를 앞둔 친구가 가고 싶다는 방향이기도 하다. 제도적, 사회적 한계가 있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선택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쪽으로 고를 수 있기를. 나는 백수 같기도 하고 한량 같기도 한 이 삶이 편하고 좋기도 하면서도 생산적이거나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함께 드는데, 친구가 그것은 우리의 K-코어에 있는 기질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마침 최근 이 주제에 대해 집에서도 대화를 매일 했었다. 가끔 이렇게 하나의 키워드가 우연히 여기저기서 나에게 동시에 다가올 때가 있다. 아직은 책임감이 크지 않은 인생의 시기여서일까. 지금 나의, 우리 부부의 방향성은 돈보다는 시간이다. (물론 둘 다 잡으면 좋겠지만.) 한국 회사에서는 연차를 쓰지 않으면 돈으로 받는 제도가 있었는데, 남편은 반대의 제도를 활용할 계획이다. 돈을 덜 받고 휴가를 더 많이 갖는 것. 마침 주말에 시부모님을 만났는데 아버님도 최근 80%로 업무 시간을 줄이셨고, 이미 80%로 줄인 뒤 만족도가 높던 어머님은 마침 이번 주에 업무 시간을 60%로 줄이는 것의 상사 결재를 받았다며 신이 나셨다. 남편이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니 두 분 모두 강력 추천하신다. 일을 덜 하면서 그 시간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집 청소나 산책을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자주 짧게 이곳저곳 여행 다니는 삶이 꽤 만족스러우신가 보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어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져도 더욱 즐겁게 살기. 나의 경력과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찾기. 일에 투입하는 정신과 시간을 줄이고 다른 투자를 통해 빨리 은퇴하기. 얇고 길게 소소하게 일하면서 취미 생활 찾기... 구체적으로는 다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을 계속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취미, 회사, 환경, 사람... 궁극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살고 싶은 삶.


뭘까 그게. 아직도 잘 모름


사무실 다녀온 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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