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후고 (Hugo)
어느 정도 음식점 (Restaurant)의 격식을 갖춘 곳에서 식사를 할 때는 보통 음료를 항상 주문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물배가 금방 차는 나에게는 참 곤란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게다가 장르 불문 어느 음식점을 가도 음료 메뉴는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음료를 경험해보는 재미도 없다. 그나마 그 집에서 직접 만든 (hausgemacht) 에이드 종류 (Limo)가 있으면 바로 시킨다. 또는, 만나기 쉽지 않은 홀러 숄레(Hollerschorle)가 있거나!
홀러 (Holler) 또는 홀룬더 (Holunder)는 한국에서 흔히 엘더 플라워라고 부르는 하얀 꽃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 정도가 되면 길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가까이 가면 달콤한 향이 난다. 덕분에 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 꽃잎으로 시럽을 만들어 탄산수에 타면 홀러 숄레가 된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탄산음료였다고 하는데, 2010년대 중반이 되면서부터는 트렌드가 되더니,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홀룬더 시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집에서 홀룬더 시럽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고,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인 바이에른의 한 작은 동네에서는 지역 경제를 일으키려는 방편 중 하나로 동네 주민들과 함께 이 홀룬더 시럽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내용을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도 있다.
꽃잎을 따는 것부터 모두 다 음식점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홀룬더 시럽. 넉넉한 양의 탄산수와 민트, 레몬과 함께 홀러 숄레를 마셨다. 가을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가을 샐러드와 함께!
예전에 뮌헨 근교의 크로이츠베르크 앎 (Kreuzbergalm)에서도 땀 흘려 도착한 정상에서 홀러 숄레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알프스의 야생화들을 이용한 꽃빵도 함께.
홀룬더 시럽에 탄산수를 섞은 홀러 숄레보다도 더욱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홀룬더 음료가 있다. 바로 후고 (Hugo)라고 부르는 칵테일. 여름이 시작되면 아페롤 스프리츠와 함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서 판매한다.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에 홀룬더 시럽, 민트 잎, 라임 몇 조각과 물을 섞어 만든 음료로, 마니아층이 있어 컬트 드링크(Kult-Getränk)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 나투르노에서 바를 운영하던 사람이 고안해낸 칵테일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널리 퍼지고 하나의 고유명사가 될 줄은 몰랐을 테다.
홀룬더 시럽의 맛과 향을 이렇게 좋아하는 나는 후고 역시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넷플릭스를 보며 프로세코 대신 로제 와인을 베이스로 사용한 후고 로제 (Hugo Rosé)를 한 병 비우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시럽을 왜 직접 만들지는 않냐고? 그 정도의 열정까지는 아직 무리다. 시럽을 한 통 만들어두고 매일 마시게 되면 홀러와 나의 애틋함도 희미해질 것도 같다. 지금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어느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홀러 숄레를 발견하면 즐겁고 반가운 마음으로 주문해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