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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Oct 23. 2021

독일살이가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국에서 산다고 모든 것이 천국은 아니지만, 가족과 친구, 모국어와 뿌리가 있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것 또한 특별히 더 낫지도 않다. 해외 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아 비교는 못하겠지만 문득 느낀, 내가 여기서 나름 괜찮게 잘 살고 있는 이유들.


1. 나라의 기본 이념

의외로 꽤 중요하다.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ist ein republikanischer, demokratischer und sozialer Rechtsstaat. 독일 연방 공화국은 공화주의, 민주주의, 법치국가, 그리고 사회국가이다. 연방 국가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가 평생을 산 한국과 비슷한 국가 이념을 갖고 있다. 내가 나의 터전으로 결정한 곳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일상에서부터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살아본 외국이 한국과 이념과 시스템 면에서 너무도 다른 중국이었기 때문에 이점이 더욱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독일에 온 지 몇 달 안 되어서 Leben in Deutschland라는, 독일로 온 이민자들을 위한 시험을 보았다. 필수는 아니지만, 주변에는 독일 거주를 위해 (비자를 포함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유럽 연합국 출신임에도 독일을 더 이해하고 싶다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본 친구들이 좀 있다. 아직 독일어 수준이 B1도 안되었을 때라 잔뜩 쫄았는데, 막상 내용을 보니 중학교 때 배운 사회 수업 내용을 독일어로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문제은행 형식이라...)


내가 들은 시험 준비반에는 유난히 난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의외로 민주주의와 사회 국가 등의 개념들을 정말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꼭 이뿐이 아니다. 선생님과 학생들 간 가장 논쟁이 자주 일어나는 주제는 성 평등이었다.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다거나 남자의 소유물로 보는, 또는 어린아이들을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는 일부 학생들의 시선에 선생님이 차분하게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어 선생님은 쉽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바이에른 및 몇몇 주에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종교 역시 큰 역할이다. 이곳에서는 종교 세도 내고, 종교적 공휴일도 많고, 가톨릭과 연결되는 것들이 참 많다. 나는 어쨌든 견진성사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고, 그래서 이곳의 많은 문화적 부분이 나에게는 새롭지 않았다. 미사 역시 독일어를 하나도 모를 때도 대충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치로 알 수 있었고, 성가들의 경우는 같은 노래도 많다. 이 부분은 개인의 종교와 사는 곳의 종교가 다른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이 같으니 마음이 편한 점은 있다.


독일어라는 언어에는 마르틴 루터의 공이 아주 크다. 그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성경을 독문학의 시작으로 보기도  정도. 그래서 언어 자체를 배울 때도 종교적 배경 덕분에 이해가 바로 되는 때도 종종 있다.

(예를 들면 das A und O 같은 표현)


, 그리고 바이에른은 2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을 받았던 곳이라 역사적이나 문화적으로 한국처럼 미국의 영향이 느껴지는  또한 비슷하.


2. 독일화 시키지 않는다

역시 다시 Leben in Deutschland 이야기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미국 다음으로 이민 오는 사람이 많다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 수업에서는 언어와 독일의 역사와 정치 등을 배우지만, 독일의 문화를 교육하지는 않는다.


나치 관련 역사 때문도 있지만, “독일인”이 뭔지, “독일스러움”이 뭔지 개인의 인종이나 생김새, 문화적 부분을 사용해서 정의하지 않으려고 함이 느껴진다. 오히려 “독일스러움”이란 사회 국가, 연방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한국에 사는 외국 친구들, 특히 결혼 이민을 해서 이와 비슷한 수업을 한국에서 듣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교육을 한다고 하면 한복을 입히고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단다. 반면 지역 부심 강한 바이에른에서는 나에게 디언들을 입히지 않았다.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배우지는 않았지만, 독일 정당의 구조 및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잘못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인종차별적이거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출판한 매체를 본다면 독자 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지, 금요일 오전에는 바이스 부어스트에 달콤한 겨자를 곁들여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주변을 봐도 사실 정말 "독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본인을 자랑스럽게 러시아계, 폴란드계, 그리스계, 이탈리아계 독일인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자기 가족의 문화를 따른다. 미국이나 호주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들여다보면 실제로 독일은 생각보다 아주 다채롭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에서 알게  건데,  "독일화"라는 단어가 70  전에는 아주 반인권적이고 끔찍한 단어였다. 그래서 아마 "독일인처럼 생겼다" 같은 표현과 같이 "독일화"라는 개념에 조심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1번에서 언급한 대로 나의 여러 문화적 배경이나 관점이 현재 독일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내가 독일 사회에 적응을 해서 살면서도 나의 한국적임을 지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실한 이슬람 또는 불교 신자라든지, 모국과 독일의 국제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든지 한다면 잘 모르겠다.


3. 음식

아주 개인적인 이유인 동시에 꽤 큰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는 해산물을 즐겨먹지 않는다. 바다가 없는 바이에른이라 더 다행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북쪽으로 간다고 해도 한국만큼 해산물이 다양해지지는 않는다. 당장 바다로 둘러싸인 영국만 봐도 음식은 (...) 그래서 신선한 해산물을 몇 년 동안 못 먹어도 굳이 그립거나 하지는 않다. 한국 식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유럽 내 다른 나라들에서도 독일에 있는 한인 슈퍼에서 주문을 할 정도! 기본적인 장류나 떡 같은 것들은 한국 슈퍼가 아니라도 쉽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버터가 많이 들어간 빵, 그러니까 페이스트리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 빵도, 식빵도 별로 안 좋아한다. 굳이 빵을 먹는다면 딱딱하거나 신 빵을 좋아하는데 - 러시아의 검정 빵 같은 거 매우 좋아함 - 독일의 빵이 대부분 이런 것들이 많고 또 싸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7일 한식을 먹지 않듯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라면 다양한 음식점이 많다. 뮌헨 역시 독일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서 오히려 한국에서 잘 몰랐던 새로운 음식이나 식재료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주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바이에른 음식을 좋아한다! 대부분 농부들이 살던 동네라 그런지 내장으로 만든 음식도 엄청 많아 그 부분(?) 도 충족이 됨. 오히려 독일 와서 새로 알게 된 내장 요리들도 있다. 감자 샐러드나 소시지 샐러드만 해도 북독일은 마요네즈를 넣어 만드는데, 남쪽은 식초를 만들어서 하는데 나는 신맛 파라 남독일 샐러드가 입에 잘 맞는다.


근데 사실 편식쟁이라 독일이라는 환경을 반면에 크게 못 누리고 있는 부분도 있다. 싸고 질 좋은 고기가 많은데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잘 먹지 않는다. 유제품과 맥주, 빵도 그렇다. 빵순이면 엄청 행복할 듯! 그리고 베이킹 재료도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데, 베이킹하는 취미가 없고 또 케익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먹으면 니글거려서 (..) 좋은 환경을 못 활용하고 있다. 아, 과자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과자들이 훨씬 맛있기 때문에 졸지에 여기에서는 간식을 잘 안 먹고 있다.. 맛이 다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재미난 신제품이 잘 안 나온다.


4. 날씨

이 부분은 다른데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흐린 날씨와 비로 유명한 아헨에서 몇 달 있었던 덕분에 바이에른 사람들의 날씨 부심을 십분 이해한다. 물론 독일에서 날씨 좋은 곳이 바이에른뿐만은 아니다. 바뎀 뷔텐베르크와 라인란드 팔츠처럼 와인 산지 쪽 동네도 날씨가 좋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눈이 잘 안 내리지!! ㅋㅋㅋ


어학원 시절 다른 친구들이 춥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는데 내 기준으로는 서울보다도 훨씬 안 추운 날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크로아티아, 그리스, 이탈리아, 멕시코 출신이었다고 한다...ㅋㅋㅋㅋ 여름은 한국보다 안 덥고 덜 습하고, 겨울은 한국보다 안 춥다. 봄에는 한국의 벚꽃길이 그립기도 하지만 ☆ 서울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날이 흐리거나 밖에 못 나가던 날이나, 여기서 구름 끼는 날이나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몸에 열이 없어서 여름에도 에어컨 있는데 잘 못 있고, 시원한 카페에 가서 빙수를 먹으면 금세 몸이 달달 떨린다. 그래서 에어컨이 없는 이곳의 여름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다는 이야기 (아직 제대로 못 겪어봐서일 수도 ㅋㅋㅋㅋ) 아무튼 장마 없고 태풍 없고 모기 없는 것 좋다.


5. 혼자만의 시간

독일 생활을 묻는 주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외로움을 잘 안 타고,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성격이라면 독일 생활이 맞을 거라고. 여러 면에서 독일 생활과 맞을 것 같지만 파트너가 없을 때 외로움을 잘 느끼는 친구에게는 장기적인 파트너가 생긴다면 독일 생활을 추천한다고 했다. 물론 개개인의 생활마다 차이가 있지만, 서울에 있을 때에 비해 사람들이 소셜라이징을 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활만 해도 우리처럼 과 행사나 동아리 행사가 많지도 않고, 우선 매번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새로운 장소를 가기에는... 도시가 좁고 영업시간이 짧다. 카페는 6시면 닫지, 웬만한 곳은 뮌헨 시내인데도 밤 10-11시면 한적하다. 밤 문화가 특히 재미없는 뮌헨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나름 큰 도시라는 여기가 이러면 다른 곳들은..?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나의 서울 생활과 비교해볼  이곳은 동아리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타쿠들도 많고. 가족과, 또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 역시. 대학가나 번화가를 가보면 이곳 역시  시간까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일주일에 3-4일을 각기 다른 약속으로 채웠던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랄까. 이런저런 회식이나 송별회, 청첩장 모임 등등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튼 혼자서  놀고, 시간  보내고, 열심히 하는 취미가 있다면 금상첨화인  같다. 나는 취미까지는 아직  찾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같다. 사실 넘쳐흐르는 시간을 끌어안고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 얼떨떨해하고 있지만,  시간을 활용해 돈을 벌거나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퇴근 이후  다른 일을 내가 스스로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날씨가 점점 좋아져서 그런가, 그냥 쉬고 뒹굴뒹굴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고 계속  자신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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