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A, 그리고 M
독일어를 정말로 손에서 놓은 지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최소한으로 잡고 있던 끈인 사내 독일어 수업을 안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유는? 미안하지만 선생님 때문이다.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합이 안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겪었다. 딱히 실력이 없으시다거나, 배우는 게 하나도 없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정말 그 선생님과의 '케미'가 맞지 않는다. 소규모로 아기자기했던 우리 회사 내 독일어 수업이었는데, 지금은 한두 명만 띄엄띄엄 가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과의 케미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 게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덕분에 평소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나의 지난 독일어 선생님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1. S 선생님
나의 첫 독일어 선생님이다. 몇몇 단어를 알려주던 독일 친구들이 아닌 정말 각 잡고 언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B1 수업 두 달에 오리엔티어룽쿠어스 한 달을 배웠다. 지역 신문사를 운영하시며 투잡 형식으로 독일어 선생님을 하시는 할아버지인데, 이분은 나와 합이 잘 맞았다. 아우크스부르크 토박이라 도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나 아욱스 자부심을 마구 내보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 단어에 꽂혀서 철학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로 새는 것도, 그 나이대의 아우크스부르크 사람 치고 굉장히 열려 있어 다른 분야, 문화권, 역사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탑재되어 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색다른 분야와 문화권에서 온 내가 재밌고, 나는 나대로 60년대 베를린에서 히피 생활을 했었고, 본인의 가족이 나치의 수용소에 끌려갔었던, 살아있는 역사책과 같은 선생님의 모든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 선생님과의 핑퐁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선생님이 툭 던지듯이 물어본 질문에 대한 글을 사전과 번역기 돌려가며 열심히 써서 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 패션과 관련해 간략한 복식사 설명도 하고, 한국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요 국정농단 이야기도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선생님과의 만남이 나의 첫 독일어 학원 데뷔(!)였던 B1반이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B2 이상 수준의 반이었으면 선생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텐데. 지나고 나니 아쉬워진 실력의 한계. 오리엔티어룽쿠어스 기간에는 아무래도 언어 시험 준비보다는 분위기가 느긋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기 때문에 거의 수업이 아니라 본인 넋두리를 하러 들어오셨던 기억이 난다. 더욱 원활한 넋두리를 위해서 심지어 영어로 자기 상황을 털어놓기도 하셨던 S... 만약 내가 계속 아우크스부르크에 있었다면 나중에 B2나 C1 단계를 이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으로 등록해서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2. A 선생님
두 번째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 이 선생님에게도 두 달을 배웠다. 역시 아우크스부르크 토박이로 부심이 상당히 있다. S보다는 훨씬 젊어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해서도 이미 정보가 나름 있었으며 FCA의 선수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 관련해서는 특히나 스포츠 아니면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열쇠를 직접 써본 것이 최소한 20년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충격을 받고 본인의 가족들에게 호들갑 떨며 그 소식을 전했단다 (그리고 그걸 또 수업시간에 말해줌.)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나라와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경청하는 모습이 느껴졌던,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선생님이기도 하다. 단순히 수업 진행을 위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겸사겸사 본인의 배경지식을 넓히려는 것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 정도였고, 그래서 매 수업시간이 다른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즐겁게 수다를 떨고 오는 기분이었다. 물론 선생님인 만큼 우리의 불완전한 대화의 단어나 표현을 잡아주는 스킬도 탁월해서 항상 뭔가 많이 배우고 왔다는 기분이 들었던 수업. 뮌헨으로 옮기면서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된 것이라 참 아쉽기도 했다.
3. M 선생님
사내 독일어 수업 선생님. 아무래도 특정 시험을 준비하거나 사설 학원 강의가 아니다 보니 더욱 자유롭게 수업을 해주셨던 선생님이다. 회사에 있는 외국인 직원들이 듣는 수업인 만큼 독일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기도 하고, 문화적인 부분 역시 많이 알려주셨다. S와 A과 다르게 M 선생님은 뮌헨에서 나고 자란 뮌헨 토박이. 하지만 뮌헨/오버바이에른 문화와 동시에 바이에른 바깥의 독일 이야기 역시 함께 공유해주어서 나름 뮌헨이라는 우물에 갇히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을 항상 하셨다. S와 A보다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꽤 열어놓고 하셨고, 본인이 임원으로 있는 Verein 행사에 초대하거나 Vereinhaus에 초대해 작은 파티를 열어주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뮌헨 현지인이 아니면 외국인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을 소개해주려 하신 것 같다. 아시아 쪽을 제외한 유럽 다른 나라들, 특히 중동/북아프리카/아랍 문화권과 북미/남미 쪽을 잘 알고 계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괜히 뭔지 모를 자극이 되었다. 아무래도 아시아 쪽에는 배경지식이 부족하셨는데, 그 점을 인정하고 '나는 아시아 쪽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으니 네가 좀 알려줘'라는 자세로 내가 하는 그 어떤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으며, 내 기준에서도 새로운 시선인 재미난 질문들을 하기도 했다. 지금 이 선생님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 들어가셔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고, 그 새로운 선생님과 잘 맞지 않아 독일어 수업을 안 가게 되었다는 결론...
이렇게 보니 이 세 선생님은 모두 다름에 대해 열려 있는 분이셨다. 스스로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지적 호기심의 범위가 경계 없이 펼쳐진 사람들이다. 꼭 독일어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어도, 내가 어떤 사람들과 잘 맞고 아닌지가 보인다. 결론은 M 선생님이 하루빨리 육아휴직에서 복귀하셨으면 좋겠다. 그럼 다시 수업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