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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Oct 19. 2021

독일 남편이 오징어 게임을 보며 한 질문

평소에는 못 느끼고 살다가도 문득 '와, 우리가 다른 문화에서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로 영상 콘텐츠를 함께 볼 때 그 점이 두드러진다. 하루는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 바타비아(Batavia)였다는 내용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바타비아'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봐 생소하게 느낀 반면, 남편은 본인이 접한 여러 문화 콘텐츠를 통해 나름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이 지명이 실재한 곳, 그것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연일 핫한 <오징어 게임>이 한 달 가까이 독일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웹툰을 많이 보는 나는 이미 방영 전부터 웹툰 플랫폼에서 광고를 많이 봐서 그 시리즈가 곧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과 수위 때문에 '나는 못 보겠네'하고 일찍이 접어두었었다. 그런데 하나둘 주변 친구들이 추천을 하기 시작하고, 슬금슬금 독일 탑 10에 오르더니 금세 1위로 올라간 것이 신기하더라. 한 번 조금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시작해 결국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오징어 게임>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보면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 세 가지를 공유한다.


1. 신발을 벗는다는 것

등장인물  부부 참가자가 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어야 자기가   있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남편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때 들어온 코멘트.


"저분 저런 상황에서도 예의가 바르시다. 실내인데 목숨 끊기 전에 신발을 벗어 고이 두셨어. "


오,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다. 나에게는 신발을 벗어 둔 그 장면 자체가 '죽음'이라는 이미지와 바로 연결된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것이 아닌 줄 맞춰서 나란히 둔 신발. 신발 코는 바깥쪽이나 열린 곳을 향한다. 모든 한국 설화에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특히 바닷가 바위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은 나름 고전적인 장면 아니던가. 나는 오히려 그 장면이 어떻게 '예의 있다'로 받아들여지는지가 의문이었다. 남편의 설명으로는, 어차피 끝낼 것(?) 아무렇게나 신을 팽개쳐두어도 될 텐데 마치 실내로 들어갈 때처럼 바르게 정리해두는 것이 격식 차리기의 연장선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신발에 대한 질문은 징검다리에서도 이어졌다. 본인이라면 절대 양말만 신고 유리 위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며, 왜 여기서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신발을 다 벗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음.. 그러게? 그런데 나 같으면 본능적으로 벗었을 것 같기도 하다. A라는 장소에서 B로 넘어갈 때는 왠지 신발을 벗게 되니까..? 이런 맥락에서 현생(A)에서 사후세계(B)로 넘어갈 때도 신발을 벗었던 것일까?


2. 한국 학생들 의문의 부르주아행

<오징어 게임> 덕분에 반스의 하얀색 슬립온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며 나 역시 열심히 리폼해서 신고 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 하얀 실내화가 생각났다. (나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해바라기 꽃을 실내화에 달고 다녔다. 물론 직접 무늬를 그리고 색칠한 버전도 있다.) 참가자들이 벗어놓은 하얀 실내화가 모여있는 장면에서는 데자뷰마저 느꼈다. '라떼는~' 하면서 남편에게 나의 하얀 실내화 리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너 주변 친구들 몇 명만 그런 거 아니었을까? 진짜 다들 저걸 신고 다녔다고?"

"??? 당연하지 국민 실내화인데? 정말로 모두 신었다니까?"

"애들이 다 반스를 신고 다닌다고??!!!"


아.. 그렇다. 이 동네에서는 저렇게 생긴 신발의 형태 = 반스 슬립온으로만 인식한다. 나도 모르게 모든 한국 학생들이 브랜드 신발을 신는다고 설명한 꼴이 되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하얀색 무지 실내화는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으며, 실제로 진짜 반스 슬립온을 실내화로 신는 경우는 본 적도 없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3. 일남은 1男

1번 참가자의 이름은 오일남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한자는 一男.  이름에서부터 세대가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연세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장남으로 태어나 저 이름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오징어 게임>에서도 1번이다. 1번 남자, 일남.


이미 예전에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옛날 작명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막례 할머님은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이웃집에는 비슷하게 막내로 태어나셔서 이름이 '아가'인 할머님이 사셨기도 했다고.


독일어 자막과 함께 봤지만 이름에 대한 대사들은 항상 내가 부연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왜 듣는 사람마다 '새벽'이의 이름이 예쁘다고, 또는 예쁜 이름과 안 어울린다고 하는지. 왜 새벽이 동생 '철'이는 성과 함께 강철이라고 부를 때 남자다운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지. 왜 '미녀'의 이름은 소위 일본의 '키라키라 네임'과 비슷하게 느껴지는지. '덕수'라는 이름의 어감은 어떤지..


독일식, 또는 유럽식 돌려막기 이름이 재미없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남편은 한국 이름에 흥미를 보인다. 내 친구들의 이름 유래에 대해, 또는 한자 뜻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면 굉장히 재미있어한다 (특히 사주와 관련되었을 때). 극 중 비중이 높거나 중요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도,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지 우리 나름 상상을 해보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름 한국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는 편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연탄 불 피우기, 서울대라는 단어가 갖는 힘, 고시원, 남아시아 노동자 등등) 그럼에도 덕분에 함께 한국 문화,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새로운 시각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신선하기도 했고. 하지만 아직도 진짜 오징어 게임이 뭔지는 모르겠다. 땅따먹기 이전 세대 놀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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