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서울행 마지막 버스에 올라탔다. 바다는 더 이상 나의 가정을 현실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여행은 떠날 때보다 돌아갈 때 더 막막하다. 어제 새벽, 연희동에서 시작된 남해여행은 이제 버스를 타고 끝을 향해 달려간다. 똑같은 길을 거슬러갈 뿐인데,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가득하다.
여행, 마무리가 반이다.
왜 여행을 떠날까. 그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으로 가득찬 여행은 매력보다 고역에 가깝다고 적었는데, 지금이 그렇다. 4시간 반. 엉덩이가 짓이겨지는 듯한 상태를 인내하고, 또 한시간을 지하철에서 꾸벅거려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여행은 끝난 게 아니다.
이게 다 여행 때문이다. 가장 춥다는 날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것도, 힘들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있지도 않은 긍정을 찾게 하는 것도, 때아닌 막차시간에 가슴 졸이며 긴장해야하는 것도 다 여행 때문이다. 온종일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고 온몸에 힘을 빠져버리게 만드는 게 여행의 참모습이다.
그런데 그렇게 피곤하고 지친 이때에,
무방비상태로 버스에 널부러지고 나서야
여행은 자신을 드러낸다.
남해엔 버스 도착을 알리는 알림판이 없다. 온다는 시간을 대중 어림짐작해 손을 흔들어야 버스를 탈 수 있다. 제때보다 먼저 지나가거나 늦게 지나가는 일도 허다하다. 내일 아침 연희104고지 정류장, 버스들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지면 나는 처음 듣는 소리처럼 그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남해 식당들은 밥 때가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다. 나의 허기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겐 오로지 일상적인 수요만이 중요할 뿐이다. 내일부터 나는 소중히 여겨지는 일상의 수요에 합류한다. CBS와 스타벅스 사이, 아주머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게 신장개업을 알리는 전단지를 건넬 것이다.
그렇게 걷지 못한 자에게 걸음은 눈물나게 절실하다. 먹지 못한 자에게 식사는 치열한 생존이다. 절실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보냈던 1박 2일, 가장 약해빠진 상태로 이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작년 8월, 프라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자유는 내일 회사 책상 앞에서 또다른 여행처럼 나를 찾아올 것이다. 인간이란 게 참 미련해서 익숙해지면 없는 취급을 한다. 일상이란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떠나고 돌아와서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지루해지고,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지면 나는 또 설레는 가슴으로 평소를 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겠지. 그게 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남해여행기 끝
다음 여행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