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견문록
*작년 8월, 트래블온에어
아시아에서 출발한 나의 여행은 지금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 보잉 787호는 홍콩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머리를 틀었다. 그 많던 한국인들이 우르르 내리고 남은 자리에 하얗고 까만 사람들이 뒤섞였다.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는 곱슬머리의 서양인이 가방을 탁- 내려놓으며 무너졌다. 우리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이내 입과 함께 마음을 연 옆자리 동무는 대화를 시도했다.
그녀의 이름은 house를 home으로 만드는 여자라는 뜻, ‘오데드’. 대조적인 피부색의 아들을 가리키며 그녀는 딸을 입양하기 위해 이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가 최종 목적지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Rome. 우리의 최종 종착지는 한참 위, 로마라고 답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못 떠날 것 같았다며 “We must have to go!” 외치자 오데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 말을 따라 했다.
We must have to go!
머플러까지 두른 그녀의 차림을 가만히 바라보자 오데드 또한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의 나에게 시선으로 응답했다. 에티오피아의 날씨는 덥지 않고 오히려 추울지도 모르겠다며 그녀는 걱정 섞인 탄성을 뱉었다.
“Good news and also sad news”
추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이미 목까지 담요를 덮은 현란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이미 그녀는 출발 전부터 오돌오돌 몸을 떨었다. 연신 손부채로 더위를 쫓는 나와 상반된 그녀의 모습에 괜히 걱정이 앞섰다.
Coffee? Coffee?
밑은 둥글고 위는 납작한 쇠 주전자를 들고 에티오피아의 까만 승무원들은 잠들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발색이 잘된 붉은 루주를 바른 그들의 입술은 묘한 매력을 풍겼다. 커피의 고향에 뿌리를 둔 항공사의 커피는 무엇이 다를까. 잔을 내밀자 커피는 미끄러지듯이 허공을 타고 내려왔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연거푸 커피를 들이킨 속이 쓰려왔다. 홀짝, 닿을 듯 말듯 혀를 내밀자 따뜻함이 밀려들어왔다. 부산한 소리에 자다 깬 현란이도 연두색 잔을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전히 기내는 깜깜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좌석과 왼쪽 방면에는 중국인 또는 홍콩인으로 보이는 배 나온 아저씨들이, 뒷좌석에는 눈동자가 아니면 어둠과 구분하기 힘들 아프리카 인들이 보였다. 옆으로는 오데드와 그의 가족들이 거의 기절하듯이 몸을 수그리고 잠들어 있었다. 정확히 비행기의 중앙에 앉아 있는 나는 허공으로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스쳐 지나가는 아디스아바바 그리고 이 비행기 안에서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구나. 그렇게 내가 앞으로 기억하게 될 아디스아바바의 첫 모습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