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견문록
*작년 8월, 트래블온에어
에티오피아 시간으로 오전 6시 35분, 드디어 반경을 정해놓고 운신해야 하는 비행기 안을 벗어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발을 내렸다. 오데드의 말처럼 쌀쌀한 날씨에 나 또한 이미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삐걱거리는 걸까. 도통 차도를 보이지 않는 현란이에 이어 나까지 아프면 어쩌지, 머리에 걱정 한 소쿠리를 이고 데스크로 향했다. 이미 인천 국제공항에서 호텔 바우처를 받은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늦어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우리는 조마조마했다.
트랜싯 패스를 받지 못한다면 공항에서 꼬박 17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따뜻한 물에 몸 한 번 담가보지 못하고, 추위를 막지 못한 채로 축축 무거운 짐 덩어리처럼 로마에 던져질 걸 생각하니 눈앞이 막막했다.
떠난 지 이틀, 여행의 설렘은 심신 난조에 실종되고 코를 훌쩍이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 그때 비행기의 옆자리 동무였던 오데드가 툭-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안녕. 그녀의 손짓은 헤어짐을 의미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지만 안녕. 오데드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채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고개를 틀어 다시 원점에 섰다. house를 home으로 만드는 여자 옆에서 나는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디스아바바 공항 직원은 우리의 호텔 바우처를 보더니 쓱- 트랜싯 비자를 내밀었고, 공항에 나가서 조금 기다리자 셔틀버스 운전기사인 조나단을 만날 수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하얀 셔틀버스에 올라타자 공항에서 7km 떨어진 톱텐 호텔에 곧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 날씨와 로마 날씨만을 생각해 시원하게 입은 나와 현란이는 오데드의 말대로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고원 지대에 위치한 아디스아바바의 오늘 기온은 14도, 딱 긴팔 긴 바지를 입고 나오면 어울릴 그런 날씨였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챙겨 온 담요가 추위를 가려주는 역할을 했는데, 호텔에 도착한 후 나는 이 담요를 이용해 패션쇼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우리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구경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아까 트랜싯 비자를 발급받던 줄에서 우리는 분홍 모자와 분홍 티를 나란히 입은 한국인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핑크 가이’라고 불렀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같은 호텔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타지에서 만난 이들은 언제나 쉽게 우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에티오피아의 일정을 함께했고, 조나단의 가이드 투어가 아닌 우리만의 나들이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조절이 안되는 온수와 냉수 사이, 뜨뜻미지근한 샤워를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점심때가 다가왔다. 온몸을 쭉 피고 잘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새삼 느껴지는 사실이다.
신라면을 곁들인 현지식을 먹고 톱텐 호텔을 나선 우리는 오는 길에 봐 두었던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말로 조나단은 그 곳이 아프리카 최대의 교회라고 했었다. 동그란 이슬람 모스크 위에 십자가가 얹어져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10분 정도 걸어서 가니 어느새 정문이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신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문에 입을 맞추는 사람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신실함이 여기저기 묻어났다.
교회를 벗어나 시장가로 들어서니 그때부턴 세상의 모든 이목이 우리에게 모였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은 강렬했고 솔직했다. 그들의 시선은 일직선으로 낯선 동양인들을 향했다.
차이니즈? 치나?
스치는 사람들마다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현란이는 손으로 X 표시를 보였고,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한 작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생물을 마주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다시 호텔로 복귀하는 길, 마땅히 볼만한 건 없었지만 여러 아이들에게 문화충격을 준 것만으로 만족하자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쳤고, 다시 햇살이 호텔 창 너머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좋은 날이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