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는 노래로만 들을래..
14-1. 정말 힘겨운 하루였다. 파도는 파도대로 안 잡히고, 힘은 빠지고, 15kg가 쪘다는 동생은 어찌나 무거운지 스쿠터 뒤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스쿠터가 흔들렸다. 전날, 밤 11시가 넘어 발리에 도착한 동생은 배낭을 두 개나 들고 왔다. 한 번도 이런 무게를 스쿠터에 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모든 게 다 계기가 됐을까. 어쩌면 그 모든 게 다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4-2. 밥을 먹고 비치워크에 대놓은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동생이 올라타자 스쿠터 뒤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시동을 걸고 힘겹게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그렇게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양옆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씽씽 지나가는 가운데, 갑자기 덜덜덜덜, 덜덜덜덜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뒷바퀴가 바닥에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황급히 우측 깜빡이를 켜, 길 가장자리 가드레일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아주 예전에 이런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자전거 바퀴 안 튜브가 터져서 맨몸으로 길 위에서 드래프트를 했던 그때.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 사이에서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하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불길했다.
14-3. 보통 원인을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번 일은 원인은 알겠는데 문제를 해결하기가 막막했다. 우선 오토바이 정비소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그곳까지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가지만, 그땐 손끝이 저려오면서 귓가가 멍멍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말이 통하는 동생은 오토바이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14-4. 타이어를 주물거려보고, 괜히 누가 도움을 줄까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멈춰 서 메카닉이 필요하냐고,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끌어주었다. 하지만 결국에 나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동생에게 길을 가리키면서 저리로 쭉 걸어가라고 가리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오토바이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오토바이 안에 있는 튜브가 내 무게는 감당할 수 있는지, 덜덜거리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나는 우선 길을 빠져나와 편의점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곤, 어디에 정비소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편의점 직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10분은 가야 한다며 길을 알려주었다. 덜덜거리는 오토바이를 끌고 천천히 20분 정도 갔을까, 눈앞에 작은 정비소가 보였다.
14-5. 정비소 직원은 내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안에서 튜브를 꺼내왔다. 튜브 교체는 450000루피아, 우리나라 돈으로 4500원이었다. 나를 패닉에 빠뜨린 시간은 그리도 길었건만, 오토바이 튜브를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한참을 서 있자 저 멀리 동생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무거운 녀석. 분노와 반가움이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14-6. 발리엔 일방통행 도로가 꽤 많다. 그래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삥글 돌아가야 하는 때가 꽤 많다. 10분밖에 안 왔는데, 그 길을 다시 돌아가는 시간은 30분이 걸렸다. 하필 트래픽 잼에 걸려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헬멧을 던지듯이 벗어던지고, 침대에 자빠져 버렸다. 너무 긴 하루, 너무 지친 날.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