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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l 16. 2017

19. 발리에서 사람이 죽었다

파도가 사람을 죽였다

19-1. 그제 아침은 모든 게 아주 선명하다. 서핑을 하기 위해 보드를 오토바이에 싣고 집을 나섰다. 운전대를 쥐고 있는 내 머리 위에서 파란 하늘이 맑게 펼쳐졌고, 햇빛은 따갑게 어깨에 내리 앉았다. 턱을 넘을 때마다, 보드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자동적으로 왼손으로 보드를 꼭 잡았다. 내 앞에 가던 오토바이는 검은색 스쿠피였고, 운전자는 하얀 헬멧을 쓰고 있었다. 쿠타 비치로 가는 길,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기억나는 이유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쿠타 비치에서 사람이 죽었다.

19-2. "라이프가드!" 두 달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다급한 목소리가 해변에 가득했다. 앰뷸런스가 다녀간 자리, 핏자국이 모래 위에 남았다. 오늘 내가 올라탈 바다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집어삼켰다. 다시 한 번, 나는 바다가 무서워졌다.

19-3. 설렘 가득한 여행을 죽음으로 마무리한 그들은 중국인이라고 했다. 바다 위에서, 모래 위에서, 그날은 하루 종일 그 얘기뿐이었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파도에 말린 것 같아." 보드 위에서 서퍼들은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이 파도 밑에서 숨을 거뒀는데, 우리는 다시 그 파도 위에서 숨을 가다듬는다.

19-4. 파도가 크기도 컸다. 세트가 들어오면 3미터 정도, 항상 파도를 주시하는 서퍼들도 조용히 바다를 관망하는 크기인데, 수영도 잘 못한다는 그들은 어떠했을까. 바닷속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머리 위에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부서진다는 걸 몰랐던 걸까.

19-5. 나낭은 자기가 있던 십수 년 동안, 서퍼 중에 죽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숨 쉬듯 파도를 내보내고 다시 빨아들였다. 에스더는 작년엔 한국인 아저씨가 수영 중에 죽었다고 했다. 매일 내가 살을 부대끼는 이 바다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19-6. 핏자국마저 파도에 지워져버린 오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시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바다 위엔 서퍼들의 웃음소리가, 해변가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19-7. 아침, 앰뷸런스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발리에서 사람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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