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발리
20-1. 오늘 같이 파도가 클 땐, 해변가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글로 읽으면 참 고상해 보이지만, 현실은 모래바닥 위에 철퍼덕 앉아서 생수병 뚜껑을 물통 삼아 그리는 부랑자 그림쟁이일 뿐. 일주일 더 시간을 번 만큼, 다시 붓을 들었다. 이것저것, 남한테 중요한 것보다 나한테 소중한 것을 찾아서.
20-2. 이젠 강습을 듣진 않지만, 항상 쿠타 비치 212surf에 간다. 우리들의 아지트. 거기 가면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에스더 남편, 나낭이 처음 발리에 와서 서핑을 시작하며 심은 나무라고. 저번에 그림 그릴 땐, 나낭나무를 못 그려서 이번엔 마음먹고 앉아서 주구장창 그림을 그렸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쉐라톤 와이파이를 잡아줘, 나는 와이파이 나무라고 부른다. 안 잡힐 땐 주문을 외우면 바로 바밤 잡아주는 센스!
20-3. 이건 우붓 스니만 커피. 스니만은 artisan, 장인이라는 뜻이라고. 내가 여기 갔다고 하니까 비치 보이들이 네가 스니만이라고 해줬다. 스니만 커피 시키니, 물이랑 쿠키랑 이렇게 한 나무 접시 위에 나왔다. 오토바이 타고 갔는데, 헬멧도 맡아주고, 주차요원도 친절하고, 테라스도 아주 느낌 있었다. 길은 참 많이 막혔지만.
20-4. 이건 쿠타에서 내가 자주 가서 브런치 먹는 Crumb&Coaster. 난 항상 오믈렛 먹는데, 바나나 팬케이크 언니들은 그렇게 먹더라. 팬케이크가 정말 두껍긴 함. 커피는 신맛 나는 딱 인도네시아 커피. 라떼도 맛있는데 그래도 나는 롱블랙!
20-5. 이건 우붓 요가반, 정말 천상계 분을 만났다. 스튜디오 말고도 카페가 있는데 각종 건강한 음료가 잔뜩.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뷰도 좋고, 와이파이도 빵빵 터져서 야구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정말 너무 행복한 하루.
20-6.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그리고 손으로도. 그렇게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은 발리. 그림을 계속 그리니까 너도나도 그리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물감이랑 이것저것 전파 중이다. 여기서도 미뇽공구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