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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l 26. 2017

22. 발리 촌년의 한국 관찰기

먼저, 발리보다 한국이 더 덥다

21-1. 한국 사람들은 정말 하얗다. 얼마나 하얗냐면, 망고스틴의 거무튀튀한 껍질 속의 숨어있는 하얀 과육처럼 하얗다. 스네이크 푸르트 껍질 같은 나와는 정말 다르다. 


친구 손과 내 손


21-2. 사람들마다 왜 오른 발목만 하얗냐고 묻는다. 리쉬 자국이 남았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 매일 리쉬를 차고 있었으니 타지 않을 만도. 리쉬와 래시가드가 있던 자리 빼고 나머지는 다  까맣다.

21-3.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하얀 사람을 참 좋아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좋아했었다. 한 달 반쯤 지나자,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혼혈이냐는 질문, 발리 사람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더 이상 경찰도 잡지 않는다. 처음엔 나시티에 반바지를 입고 다녔지만, 이제 오토바이를 탈 때면 후드 집업에 긴바지,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탔다. 장갑도 있었으면 아마 장갑도 끼고 탔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는 까매졌다.



21-4. 한국에선 탈 일이 없다. 비 오는 날에도 파란 하늘이 조각조각 보였던 발리와 달리, 한국 하늘엔 빈틈없이 회색빛이 가득이다. 마치 틈을 줘선 안 되는 듯, 빡빡하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데, 도무지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비가 오는데, 맑이지지 않을 수 있을까.

21-5. 빗길에도 차들이 정말 빠르게 달린다. 발리에선 1등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이기 때문에, 2등 교통수단인 자동차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왜 사람들이 발리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게, 한국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21-6. 교통수단이 참 많다. 버스도 택시도 지하철도. 행인들도 참 많다. 도보가 참 넓다. 우리나라. 도로도 참 넓다. 발리 그 좁은 길에서 양방통행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던 그때가 참 신기할 정도로. 

21-7.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주름살 사이에 짜증이 묻어난다. 라오스에 다녀온 친구는 인천공항에서 택시를 잡을 때부터 그게 느껴졌단다. 다들 뭐가 그렇게 힘든 걸까. 아니 나도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거긴 욕망은 사라지고 
욕구만 남은 곳이야


이유도 모르고 웃는다. 까맣게 탄 얼굴만 남았다. 친구는 라오스를 나는 발리를 입고 있다. 

21-8. 인중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유전이다. 더우면 어김없이 우리 가족들의  인중엔 여름 고드름이 나타난다. 친구들은 발리가 더 덥지 않냐며, 노트북 화면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발리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데. 발리에서 입었던 립컬 후드 집업은 돌아와 겨울 옷장에 파묻혔다.

21-9. 어쩔 수 없이 발리 촌년인가 보다. 서울이 참 낯설다. 서울 사람들도 대책 없이 까맣게 탄 내가 낯선가 보다. 우리 고양이들도 나를 낯설어한다. 침대 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21-10.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뭐하지? 분명 엊그제까진 그저 보드를 들고 바다에 나가면 됐는데, 이젠 보드 없이 사회라는 바다 위에 떨어진 기분이다. 이대로 표류할 게 아니라면 나의 보드를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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