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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l 26. 2017

23. 서핑, 쉽지 않아요

당신의 생각보다 어려워요

23-1. 5년 새, 서핑이 여름 스포츠 최대 간지를 가져버리셨다. 너도나도 모두 서핑 나들이를 떠난다. 국내에선 제주, 속초, 양양, 강릉으로, 해외에선 발리, 발리, 발리, 발리로! 그런데 서핑이 참 만만한가 보다. 너도 나도 처음엔 며칠, 몇 주면 마스터하리라는 마음을 품곤 하니까.


며칠이면 마스터할 수 있어요?


23-2. 두 달 내내, 서핑하는 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얼마나 타야 서핑을 마스터할 수 있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대개 서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핑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질문이니까. 며칠이나 마스터 같은 단어는 입에도 올릴 수 없으니까.


저도 참 알고 싶네요


23-3. 6년을 탄 언니도, 1년을 탄 오빠도, 2달을 탄 나도. 그 질문의 답이 알고 싶다. 어떻게 하면 배럴*을 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에어*를 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파도를 아주 멀리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지.


*배럴
파도가 깨지면서 생기는 튜브, 배럴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를 타는 건 이 생에선 가능할까..
*에어
공중에 점프! 360도 해서  다시 착지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
스프레이
저렇게 물을 칙- 뿌리는 게 스프레이


뭐든 난 못해.. 다만 발끝에라도 닿을 듯 안 닿을 듯하는 게 워킹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UCIK8JRLg


23-4. 발리에서 두 달 내내 한 일이라곤 파도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비가 퍼부을 때도, 해가 쨍쨍 날 때도, 날이 잔뜩 흐릴 때도 맨날 쿠타 비치에 앉아 바다를 쳐다봤다. 그러다 보니 우연찮게 처음 서핑을 하러 온 사람들이 이것저것 서핑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뭐라고. 아마도 하루 종일 죽치고 있는 내게서 바다 짠내가 났나 보다. 현실은 비루한 서핑 신생아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이들보단 울음소리라도 낼 수 있으니 몇 가지 것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23-5. 피어싱이나 귀걸이는 빼고 탈 것, 선글라스도 빼고 탈 것, 되도록 워터레깅스를 입을 것, 비키니만 입지 말 것을 추천한다. 피어싱, 귀걸이, 선글라스, 고프로, 셀카봉 등 잃어버리고 싶다면 환영이지만, 바다에 기부하고 싶다면 또 환영이지만, 원하지 않을 테니까. 비키니는 나의 소중이를 모두에게 공개하겠다, 하는 마음으로 타신다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을 테니까. 풀메이크업을 하고 오신 많은 분들이 바다에서 새로 태어나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좋은 충고를 했다고 속으로 뿌듯해하곤 했다.


파도를 타는 게 아니라 파도가 태워주는 것


23-6. 바다를 이기려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질 수밖에 없다. 서핑은 바다와 싸우는 스포츠가 아니다. 파도를 멈출 순 없지만 서핑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이미 패배를 전제하고 바다 위에 뛰어든다. 서핑을 배우는 당신, 바다에 고개 숙이는 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


23-7. 서핑이 정말 인기가 많긴 많나 보다. 물을 무서워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배우러 왔다. 무엇이 그들을 서핑으로 오게 한 걸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서핑을 해도 되냐고 묻곤 했다. 답부터 말하자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서프보드 자체가 구명도 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명조끼는 패들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제대로 서핑을 하기 힘들다. 쿠타 비치에선 라이프가드도 서프보드로 사람을 구하러 간다. 만약 서프보드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발과 보드를 연결하는 리시를 잡고 당기면, 보드가 당신 쪽으로 아씨오 보드! 한 것처럼 올 테니까.



23-8. 밖에 나오면 파도가 좋아지고, 들어가면 탈만한 파도가 없는 건 변치 않는 진리. 처음엔 바로 리시를 차고 나갔는데, 나중엔 아무리 좋은 파도가 많아도, 내가 타지 못하면 좋은 파도가 아니라고 낄낄대곤 했다. 바다 앞에 이렇게 평등하고, 바다 앞에 이렇게 불평등한 게 서핑이다. 


23-9. 나라 안에서도 연애 못하는 사람들은 나라 밖에서도 연애를 못하는 것처럼, 운동을 잘 못하는 사람이 서핑만은 잘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서핑 자체가 코어근육과 팔근육을 필요로 하고, 우리의 체중이 많은 걸 좌우하기 때문에. 물론 뚱뚱해도 서핑 잘하는 사람 많다. 다만 무거운 만큼, 그 무게를 캐리할 팔근육이 거대하다는 것. 그러니 서핑하려는 당신,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멋진 몸매도 잘 타야 돋보이니까, 우선 운동하자.


23-10. 서핑을 통해 배운 것들 중에 가장 독보적인 건 겸손해지는 것. 우리가 아무리 패들링을 잘하고 가볍고 유연하고 균형을 잘 잡아도 파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파도가 들어올 때를 기다리며, 그 파도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내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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