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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Sep 26. 2017

유기묘 두 마리, 유기견 한 마리 1

너희의 이름은 가족

사람 다섯, 동물 셋.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는 우리 집에 어쩌다 고양이 둘, 개 하나가 들어오게 된 건지 머리로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엔 둘째가 유기묘라며 주먹만 한 털 뭉치 두 마리를 데려오더니 나중엔 첫째가 엉덩이가 앙상한 말티즈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엄마, 이거봐. 귀엽지. 둘째가 입고 있던 점퍼의 자크를 내리자 꼭 호랑이를 닮은 새끼 고양이가 고개를 쑥 내민다. 얘는 사람을 엄청 좋아해. 집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나 봐. 상자 속에서 발견됐는데, 얘 말고 다른 새끼들은 다 얼어 죽었어. 너 하나도 간수 못하면서 어디서 짐승 새끼는 거둬들일 생각을 했냐는 말이 입천장에 닿았다가 쑥 들어가 버린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퍽이나 좋아했다. 고릉고릉 거리는 소리가 둘째의 옷 밖으로 삐져나온다. 엄마, 얘 지금 엄청 좋나 봐. 골골송한다. 웃지도 못하고 화내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둘째를 쳐다본다. 그 때, 그 새끼 고양이의 밑으로 불룩하게 나온 둘째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둘째의 시선이 나와 함께 아래로 향했다. 얘는 좀 낯을 가려. 길고양이인데, 어미한테 낙오돼서 데려왔어. 하루 동안 지켜봤는데도 어미가 안 찾아오더라. 그러면 냄새가 다 묻어서 다시 만나도 못 알아보거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뜬다. 침을 꾹 삼켜내는 것처럼, 눈으로 분노를 삼켜내는 건 삼 남매를 키워내는 동안 충분히 익숙해졌다. 눈 앞에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둘째가 입을 연다. 한 마리만 집에 있으면 외로울 거 아냐. 얘는 나중에 보여줄게. 둘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듯, 방을 향해 잽싸게 발걸음을 놀린다. 둘째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숨을 내쉰다. 그래, 너를 이렇게 키운 것도 나지, 속으로 중얼거린다. 애들 관리는 네가 해. 닫히는 문틈 사이로 작게 말을 밀어 넣는다. 웅, 그럴게. 그리고 얘네 이름은 래핑이랑 폭스야. 래핑폭스. 둘째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그렇게 유기묘 두 마리가 집에 왔다.


나라고 동물을 싫어했던 건 아니다. 다만 동물을 귀여워할 여유가 여태껏 없었을 뿐이었다. 자식새끼 세 마리를 키우는 것도 벅찬데, 동물 새끼를 키울 생각을 할리가 없었다. 자식들은 그런 마음도 모르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개 한 마리 키우자, 키우자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손사래를 쳤고, 호통도 쳐봤지만 그놈의 개 타령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퇴근하고 들어온 내 앞에 사랑방의 애견 카테고리를 펼쳐 보이며, 이 개는 공짜라며 내게 쏟아내던 여섯 개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보다 먼저 패배 선언을 한 건 애들에게 약한 남편이었다. 친구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어디서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를 데려온 것이다. 밤에 베란다에 내놓으면 언제 데려갔는지 아침엔 아이들 침대에서 꼼지락대며 발견되곤 했었다. 아이들은 그 강아지를 애지중지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집에 온 지 1주일째 되던 날, 강아지는 죽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보장염이란 병명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친정집에도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강아지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감나무 밑에 구덩이를 파서 죽은 강아지들을 묻었는데, 가끔 어미개가 다시 구덩이를 파헤쳐 차가워진 강아지들을 꺼내 품고 있곤 했다. 쟈도 지 새끼가 죽은 게 안 믿기는 거겠제, 평상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끔뻑이곤 했다. 저럴 때 보면 동물이 사람보다 나아야. 왠지 모르게 슬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같이 눈을 끔뻑였다. 아버지는 다시 죽은 애들을 어미개에게 빼앗아 구덩이 속에 묻었다. 그리고 다신 파헤칠 수 없게 그 위에 무거운 돌들을 옮겨놓았다. 흡사, 죽음을 부정할 수 없도록 묘비를 세우는 것만 같았다.


그때 그 강아지들도 파보장염에 걸렸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금세 다른 개를 데려왔다. 이번엔 하얀 털과 갈색 털이 섞인 잡종견이었다. 잡종 아니야, 믹스견이야, 믹스. 둘째는 유난히 그 개를 좋아했다. 그 개도 유난히 둘째를 따랐다. 한 번은 남편이 둘째에게 회초리를 휘두르고 있을 때, 그 개가 둘째의 종아리와 남편의 매 사이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깨갱. 개의 비명소리에 맞는 둘째도 때리는 남편도 보는 우리도 모두 놀랐더랬다. 아빠 미워. 그 날은 한 번도 맞으면서 운 적이 없었던 둘째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날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날 때문에 둘째가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중에서야 나는 그 날의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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