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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Oct 12. 2017

사는 게 구름 같아요

위에서 보면 푹신해 보이고 아래에서 보면 높아 보이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구름 보는 걸 좋아했다. 구름을 떼서 한 입 베어 물면 정말 솜사탕 맛이 날 것 같았고, 구름 위에 몸을 던지면 엠보싱보다 더 폭신폭신할 것 같았다. 시골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 드라마를 보다가 스스륵 잠이 들곤 했다. 구름만 봐도 재밌던 시절, 사는 게 참 구름 같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 덕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가까운 중국부터 몽골,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나중엔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여러 대륙의 여러 구름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구름은 관찰의 대상에서 탐험의 대상으로 옮겨갔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구름이 형체 없는 수증기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구름을 보면 솜사탕이나 침대가 떠올랐다. 사는 것도 그랬다. 때론 쓰기도 하지만 달달할 때가 더 많을 거라고, 거친 길보단 푹신한 길이 더 길게 이어질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얼마나 구름 위아래를 오갔을까. 서서히 청년 시절이 왔다. 사실 말로만 성인이지, 유년의 연장이었다. 유년의 때가 벗겨진 건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학생 땐 회사원과 노동자는 다른 종류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하며 스스로가 바로 그 노동자라는 걸 깨달았다. 배려와 이해보다 배척이나 차별에 익숙해졌고, 웃음보단 울상을 짓는 때가 잦았다. 당연히 물보단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행동의 씨앗이 예전엔 욕구에서 비롯됐는데, 이젠 의무에 국한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래도 괜찮나, 이렇게 괜찮나, 이대로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괜찮은 조건인데 괜히 욕심이 많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잘 떠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안엔 그 둘이 다 있었다. 다만 후자가 조금 더 힘이 셌을 뿐이다.


한참을 날아온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서서히 활주로를 향해 몸을 기울였을 때,

처음으로 구름이 참 슬퍼 보였다.


사는 게 참 구름 같구나, 

아래에서 보면 높아 보이고 또 위에서 내려다보면 푹신해 보이고. 

하지만 정작 구름은 앞이 보이지 않고, 공허하고, 또 축축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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