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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Oct 13. 2017

피터팬 할아버지

피터팬은 왜 피터팬일까?

연희동엔 피터팬이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 주말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고, 저녁에 가면 맛있는 빵이 다 떨어지는 탓에 주로 평일 오전에 그 빵집에 간다. 장발장이 훔친 빵, 깜빠뉴, 아기 궁둥이, 마늘바게트 같은 빵들을 집고 있으면 가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리고 말을 건다.


"이 빵은 말이야. 소화가 잘되는 빵이야."


처음엔 이상한 손님인가 싶었는데, 찬찬히 보니 밖에 걸려 있는 현수막 속 남자와 똑 닮았다. 피터팬의 첫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할아버지, 피터팬을 만든 첫 제빵사란다. 이제 빵을 굽진 않지만, 빵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가끔씩 빵집에 나와 빵을 본다는데, 하필 그때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피터팬의 역사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었다. 1978년, 연희동엔 자전거를 타고 빵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작은 빵집을 열었고 그 아들이 또 그 손자가 이어받았다는 이야기. 모든 빵이 다 천연발효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 따위 나에겐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저 맛있는 빵을 파는 빵집이구나, 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친구는 웃으며 피터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엘리게이터라는 빵을 자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막 식빵이 나왔을 때 얼마나 뜨거운지, 피터팬 소보루가 얼마나 맛있는지. 나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근데 이름은 왜 피터팬이래?"


그러자 친구 눈에서 잠시 반짝, 빛이 났다. 무언가 엄청 따끈따끈한 빵이 갓 나온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것도 자기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다며 친구는 입을 열었다.


"나는 늙어도 빵집은 늙지 말라고, 피터팬이라고 지으셨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살짝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뒷짐 지고 빵 주변을 맴돌던 할아버지, 어떻게 이 빵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피터팬. 요새 들었던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다. 



나는 늙어도 빵집은 늙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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